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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슴새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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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라는 강동6주를 갖고 나중에 시비를 걸고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요나라와 고려의 서희와의 외교후 강동6주에 땅을 점령후 성을 건설하는데요.

이후에 요나라는 이지역을 갖고 시비를 걸고 갈등이 일어나는 배경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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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란이 993년 1차 침입 당시 서희의 담판으로 강동 6주를 고려에 양보한 이유는 송과 단교하고 고려와 거란 사이의 여진족을 제거하여 서로 소통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송과 단교하지 않자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처들어 왔으며, 강동 6주에 대해서도 돌려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강동 6주가 있는 지역은 험준한 요세 지역으로 거란의 고려 침입 과정에서 쉽지 않은 지역이었습니다. 실제로 2차 침입시 양규가 거란군을 막은 흥화진에서 격퇻하여 거란은 급하게 고려와 강화를 맺어야 했으며, 3차 침입시 거란이 대패한 귀주도 강동 6주 지역입니다. 결국 강동 6주는 전략상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가 거란과의 약속과 달리 송나라와의 통교를 계속 이어가고 거란 역시 뒤늦게 이 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을 알게됩니다.

      거란은 고려에 야율행평, 이송무 등을 파견해 돌려주길 요구하나 고려는 거절하게 됩니다.

      이에 거란은 압록강 위에 부교를 설치, 보주성을 쌓는 등 고려에 대한 무력 침략 태세를 갖추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가 강동6주를 얻은 이후에

      진지를 구축하는 등 이에 따라서 송라나라와

      계속하여 친선관계를 이어나가자 강동6주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이를 거절하자 2차 침입을 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이 강동6주가 소위 '요충지'였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갈등이 일어났던 것이며, 쉽게 말해 그냥 고려에게 넘겨주기는 아까운 땅이라 생각했던 것이 갈등의 핵심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