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신문에 한 가지 내용에 대해 궁금한게 있습니다
독립신문에서 외국인이 우산을 쓰고 나갔다가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어째서 우산을 쓴것만으로 그러한 일을 겪게 된건가요?
당시 우산이 어떠한 의미가 있던걸까요?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생소한 물건에대한 이해부족이라서 그랬습니다
우리가 현재 쓰는 우산은 개화기 때 선교사들이 들여왔다”며 “당시만 해도 우산은 하늘을 가린다는 이유로 평민들에게는 금기시된 물건”이라고 밝혔다.당시만 해도 우산은 하늘을 가린다는 이유로 평민들에게는 금기시된 물건”이라고 밝혔다.
하늘과 동격은 오직 임금이었다. 임금은 우산보다 양산을 썼다. 일산(日傘)이라고도 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랜 가뭄 끝에
하늘에서 내린 비를 신성하게 여겼다.
그 비를 우산으로 막는 것은 하늘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내려주는 복을 막는다고 생각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농사를 지어 왔기 때문에 하늘의 뜻에 거스르지 않고 순종하며 살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비를 몽땅 맞은 것도 아니었다.
도롱이를 입거나 삿갓을 써서 최소한으로
비를 피하며 농사일을 이어갔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전 부터 평민이 우산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비가 내릴 때 도구를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가리는 것은 하늘을 거역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우리의 우산 풍습에는 농경민의 정서가 철저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독립신문에는 외국인이 우산을 쓰고 거리에 나갔다가 집단폭행 당했다는 기사도 실려 있다고 합니다. 왕족이나 귀족들이 햇빛을 피하는데 사용했으며 이것들은 왕족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일반 서민들은 사용하지 못했는데 서양의 한 외국인이 이를 인지 하고 못하고 우산을 썼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지요.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였는데, 이때 외국인이 우산을 쓰고 다니는 것은 일본인들이 실내에서 우산을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산을 쓰는 것은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이 일본인들과 구분되는 상징적인 표시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이러한 상징적인 표시를 불쾌하게 생각하고, 우산을 쓰고 다니는 외국인들을 차별하고 폭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제시대에는 외국인들이 일본인들과 같은 권리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폭력적인 공격에 대한 법적인 보호도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산을 쓰고 다니는 것은 당시 외국인들이 일본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상징적인 차이가 일부 일본인들의 차별과 폭력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들은 다양한 인종, 문화, 국가 간의 평등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문화 교류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