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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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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호의 난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민왕 재위 시절 1374년에 제주도에서 말을 사육하던 원나라의 잔존 세력인

목호들이 난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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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목호의 난은 고려 공민왕 때 탐라(제주도)의 목호(몽골의)들이 일으킨 반란을 말합니다.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1273년(원종 14)원나라는 탐라의 삼별초 난을 진압하고, 이곳에 군민총관부를 설치, 다루가치를 두어 다스렸습니다.

    1277년(충렬왕 3)에는 목마장을 설치, 목호를 보내어 말을 기르게 하였는데, 이 일은 고려 말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 뒤 1295년 왕의 교섭으로 탐라가 고려에 귀속되어 이름을 제주라 고치고 목사와 판관을 파견하였다. 목마장은 가끔 원나라가 직접 경영하기도 하였습니다.

    1370년(공민왕 19)명나라와 국교가 굳어지고 제주의 말을 명나라에 보내게 되었을 때, 목호들은 “우리 세조황제가 방축한 말을 적인 명나라에 보낼 수 없다.”라 하여 소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목호의 난은 고려 공민왕 23년에 원의 목장이 있던 탐라에서 말을 기르던 몽골족 목자인 목호등이 주동해 일으킨 반란으로, 이 바란의 이유는 원을 북쪽으로 몰아내고 중국 대륙을 차지한 명이 고려에 대해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북쪽으로 쫓겨간 원의 잔당을 치는데 필요한 제주마(濟州馬) 2천 필을 바칠 것을 고려에 요구하였는데, 제주 목호의 지도자였던 석질리필사 · 초고독불화 · 관음보 등은 이에 반발하며 발생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기른 말을 자기 나라를 치기 위해 바치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말이지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목호의 난(牧胡亂)은 고려 공민왕 23년(1374년)에 당시 원(元)의 목장이 있던 탐라(오늘날의 제주도)에서 말을 기르던 몽골족 목자인 목호(하치)들이 주동해 일으킨 반란 입니다. 하치의 난(合赤의 亂) 또는 난이 일어난 해의 간지를 따서 갑인의 변(甲寅의 變)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1370년 고려가 명나라와 수교를 맺고 명에게 말을 보내기로 결정 하자 목호들이 반발하여 이를 토벌 하고자 고려 조정에서 최영 장군이 약 2만5천의 군대를 제주에 보내 목호들을 정벌 하고자 했던 사건 입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몽골 제국이 무너진후 고려정부는 제주도의 말을 명나라에 보내기로 약속하였는데, 제주목호들은 이 결정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374년 8월 제주 해안가에 314척의 고려 전함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묵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최영 장군이 제주민 숫자와 맞먹는 2만5600명의 고려군을 이끌고 온 것입니다. 수천의 탐라 몽골군이 진압됐지만 제주민의 피해도 막심했습니다. 섬 인구 절반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묵호는 원나라의 목장에서 말을 기르던 목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원나라가 명나라에 제압되어 공민왕의 반원 자주 정책을 시행하면서 지위와 이익이 위협받았습니다. 또한 명나라가 고려에게 제주도의 말을 바치라고 요구하자 말을 적국에 보낼 수 있다고 1374년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고려 정부는 최영을 총사령관으로 보내 진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