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승만 대통령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으로써 선행도 있지만 악행도 못합니다. 1954년에 실시된 “5․20총선은 경찰의 곤봉이 당락을 결정했다고 해서 ‘곤봉 선거’”라고 불렸다고 할 정도 입니다. 이승만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조봉암은 이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자신의 지역구(인천 을구)에서 등록 서류를 탈취당하고, 부산에서도 그러한 일을 당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조봉암의 선거사무차장인 김성주라는 인물은, “1953년 6월 국군 직제에도 없는 헌병 총사령부로 끌려가 밀실에서 고문으로 살해”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조봉암도 1959년에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하고 맙니다. 52년 뒤인, 2011년 대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그는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것이지요. 또한 국민 방위군 사건도 있었습니다. 국민방위군의 고위 간부들은 국민방위군 장병들에게 지급해야야 할 물자들을 중간에서 착복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국민방위군 장병들이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는 참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 사건에 대해 “9만 명가량의 군인이 동사, 아사, 병사한 천인공노할 사건”으로 규정 짓고 있다고 합니다. 이때는 아직 남북 전쟁 중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측근들은 국가 안보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