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를 보기 전에 짚고 갈 게 하나 있는데, 수능 채점은 이미 기계가 하고 있습니다. 전 과목이 객관식이고 수학 단답형까지 답안지를 광학 판독기로 읽어 자동으로 매깁니다. 그래서 채점을 인공지능에 맡기자는 말은 이미 자동화된 일을 다시 자동화하자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말씀하신 매년 문제가 되는 사건들도 사실 채점 오류가 아니라 문항 오류입니다. 복수 정답이 인정되거나 정답이 없다고 판정된 경우들이죠. 이건 답안지를 읽는 단계가 아니라 문제를 만들고 검토하는 단계에서 생긴 일이라, 채점을 인공지능으로 바꿔도 그대로 남습니다. 고쳐야 할 곳이 다른 셈이에요.
그래서 인공지능을 넣어 실익이 있는 자리는 채점이 아니라 출제 검토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나온 기출과 교과서, 학술 자료를 통째로 대조해서 표현이 애매한 곳, 복수 해석이 가능한 선택지, 과거 문항과 겹치는 부분을 걸러내는 보조 도구로요. 사람 검토진이 놓치기 쉬운 게 정확히 그런 대조 작업입니다.
이의 신청을 심사할 때도 쓸 만합니다. 짧은 기간에 수천 건이 몰리는데, 같은 취지의 주장을 묶고 관련 근거 자료를 끌어와 정리해 주는 정도만 해도 심사진이 판단에 쓸 시간이 늘어납니다. 판단 자체를 맡기는 게 아니라 판단할 재료를 갖춰주는 역할이죠.
최종 점검은 사람이 해야 한다는 쪽 의견도 저는 기술 불신이라기보다 성격상 당연한 요구라고 봅니다. 수능은 이의 신청과 소송까지 이어지는 시험이라 왜 이 점수인지를 조문처럼 설명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확률로 답을 고르는 방식은 그 설명을 대기가 어렵습니다.
책임 소재도 걸립니다. 결과가 잘못됐을 때 누가 책임지느냐는 물음에 모델이 답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같은 답안을 두 번 넣으면 반드시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이 재현성 요건도 지금 방식의 채점기가 훨씬 잘 지킵니다.
정리하면 채점은 이미 기계가 하고 있고 정확도도 이미 매우 높습니다. 새로 넣을 자리는 출제 검토와 이의 심사 보조 쪽이고, 사람이 최종에 남는 건 기술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설명과 책임을 사람이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선만 지키면 도입 자체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