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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혹한 쇠똥구리
고혹한 쇠똥구리23.04.01

조선시대도 지금과 같이 마을 이장이나 통장이 있었나요

현재 우리 시골마을 같은 데 가면 아직까지 마을이장이나 통장 같은 게 있잖아요 그렇다면 옛날 조선시대에도 마을 이장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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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0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1413년)의 지방행정구역은 전국8도와 도 밑에 현재의 시·군·구에 해당하는 4부, 4대호부, 20목, 44도호부, 82군, 175현과 현재의 읍·면·동에 해당되는 면, 방, 사를 두고 그 밑에 지금의 리에 해당하는 동, 리, 촌이 있었다고합니다.

    오늘날의 통·리·반제도와 유사한 제도는 조선중기(1675년 숙종 원년)에 5가통절목 21조에 따라 행정과 주민을 매개하는 기능을 갖는 법적인 조직으로 제도화되었으며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소부락집단으로 동·리·포·평·촌·부락 등의 명칭이 혼재되어 있었으나, 일반적으로 동 또는 리라고 불렀다고합니다.

    조선시대 지방제도 특징 중 면 행정은 면장에 의해 사무관리 및 집행되었고, 동·리장을 감독하였다고합니다. 면장은 (리정장, 면임, 도윤, 풍헌, 약정, 검독, 방장, 사장, 관령 등으로 불렀고, 동·이장은 이정, 동수, 존위, 통수, 영좌, 좌상, 두민 등으로 불렀으며 동·리 내의 사무행정을 처리하였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질문자님께 답변을 드리자면

    조선시대에 마을 이장을 동수라 불렀으며, 일제 때는 구장으로 불리었고, 해방후에는 이장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일제강점기에 구장 제도로 개편되었다가 1949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되면서 다시 부활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이장은 제도적 측면에서 일제 강점기의 구장(區長) 전후로 그 성격이 크게 구분된다. 일제는 식민지 통치수단의 하나로 1914년에 군면(郡面) 통폐합을 시도하여 전국을 13도, 12부, 220군, 2,522면으로 개편하였다. 1917년에는 면제(面制) 개정을 통해 ‘면’에 공법인 자격을 부여하고 이장 제도를 폐지하고 임명직 구장 제도로 개편하였다. 그 이전에는 리(里)가 공유재산도 소유하고 주민 직선으로 대표를 뽑는 자치기구 성격이 강했다. 결국, 일제 강점기의 구장은 면장과 면사무소, 순사로 이어지는 행정체계의 말단에서 주민을 강력하게 통제하던 역할을 담당했었다. 대한제국 시기에 마을(리)이 자치기구로 발전할 수 있는 경로를 모색하고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그 경로가 차단되고 일제 수탈을 위한 최일선 행정기구로 전락한 셈이다.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1949년에 지방자치법이 제정되었다. 이 당시의 이장은 법률에 “주민이 직접 선거한다”, “임기는 2년으로 한다”고만 규정하여 행정 하위기구로 보지 않고 자치적 지위가 인정되었다. 하지만 1961년 집권한 군사정부는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1988년까지 유지)을 통해 읍·면 자치를 중단시키고, “이장은 읍·면장이 임명한다”(제9조 제2항)고 규정하여 행정의 말단 성격이 강조되었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http://www.agrinet.co.kr)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지방의 동리에서 호적에 관한 일과 그 밖의 공공사무를 맡아보던 사람으로 이임 이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향리, 현감, 동유관, 진사 등의 지방 행정 기관이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향리가 가장 중요한 지방 행정 기관이었습니다. 향리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 사는 지역 단위로 조직되어 있었으며, 향리 이장이 행정을 담당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현대적인 마을 이장이나 통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마을 내에서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마을 회의"나 "마을 임원" 등이 있는데, 이들은 마을 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처리하거나 조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지방 관리를 담당하는 지방 관리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각 지역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고 주민들의 요구를 처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권한과 역할은 현대적인 이장이나 행정관과는 매우 다르며, 그 역할과 권한은 제한적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마을에 일을 맡아서 연락을 하거나 업무를 전달하는 이장이 존재 했습니다.

    지역의 책임자로 이장이라고 불리거나 이정이라고 불리면서 일을 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도 이장이 있었습니다. 면윤의 통솔을 받는 이정 혹은 이장의 임기는 3년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 이정의 지위와 역할은 첫째, 인구이동 현상의 시정 기능이 수령과 더불어 이정에 의해 집행되는 것이 제도화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정이 이내의 인구이동 현황을 수령에게 보고하지 않으면 장(杖) 70도의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둘째, 양민이 삭발하고 승려가 되는 풍조를 시정하는 데 이정과 수령은 같은 차원에서 통치책임을 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셋째, 출생 및 사망자 신고, 신도자(新到者) 신고의 임무를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호적법 시행에 있어 수령의 직무를 보좌하는 말단조직의 실무자인 것이지요. 이정은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오늘날의 이장(里長)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