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시대 불교사찰에 대해서 궁금한점 질문드립니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불료가 철저하게 탄압된 시대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원래 사찰들도 지금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보이는 동네의 교회처럼

그렇게 마을에 있었는데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지금의 산속으로 사찰들이

옮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요.

근데 산속으로 숨어들고 옮겼으면 더 이상의 추적이나 핍박 탄압은 하지 않았나요?

현재까지도 많이 남아있는걸 보며 산속으로 은둔하면 그냥 봐주거나 더이상의 탄압은 없었는지

실상이 궁금합니다.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성립하였으며, 따라서 억불숭유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런데, 사찰도 도심에서 떨어져 산속에서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그 외에도 스님들은 궁궐과 도성 출입이 금지되었으며, 사찰의 토지와 재산이 몰수 되었습니다. 게다가 승려는 천민으로 취급받았으며, 수많은 사찰이 폐쇄되었습니다. 따라서 사찰은 탄압을 피하기 위해 산속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수행 불교로 역할이 전환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 정부의 통제가 약화되고, 민중과 결합되어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경제적으로 성장한 양반 지주, 상인들의 지원을 받은 사찰이 건립되기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는 말씀하신 것처럼 숭유억불 정책이 있었기에 고려시대와는 완전 반대로 천대 받는 계층이 되었습니다. 백정 같은 천민으로 분류 되었으며, 한양에 들어올 수 없도록 제한을 두었습니다. 그만큼 승려들은 조선이라는, 성리학이라는 관념에서 불교와 승려는 철저히 탄압을 받았지만, 적어도 민간에게 있어서 불교는 존재했습니다. 백성들에게 정신적인 기틀이 되었고, 심지어 양반들 또한 자신들의 안녕을 빌고, 길흉화복을 빌었습니다. 게다가 왕실 또한 불교를 완전히 배척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교는 살아남았으며, 임진왜란 같은 적이 침입하였을 때 승병을 구성하여 대항하기도 했을 정도로 불교가 조선에서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