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직전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75년만에 삼부회가 소집되었습니다. 즉, 삼부회는 국왕의 자문과 세금 승인의 성격이 있었지만 정기 의회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필요할 때 소집되었는데, 1614년이 이후 열리지 않은 것이 루이 16세때 소집된 것입니다.
하지만 표결 문제를 놓고 1,2신분은 신분별 투표, 3신분은 머리수 투표를 원했습니다. 신분별로 1표씩 행사하는 방식에서는 성직자와 귀족이 서로 손잡으면 항상 제3신분이 밀렸기 때문에, 국왕 입장에서도 굳이 삼부회를 열어도 원하는 결정을 얻기 어렵고 정치적 갈등만 커질 수 있었습니다. 절대 왕정 시절 삼부회는 국가 운영의 중심 기구가 아니며, 거의 형식적인 협의체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1789년 오랜만에 소집된 삼부회에서 갈등이 터진 것입니다. 즉 3신분이 머리수 투표를 요구하면서 혁명의 불씨가 된 것이죠. 국왕과 귀족들은 삼부회를 해산하려 했으나 3신분들은 테니스코트에 모여 국민의회를 열어 독자 행동을 시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