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한국사-김홍집은 기회주의자인가 애국자인가

일본이 경복궁 점령후 1차갑오개혁-제1차 김홍집내각에선 자주적, 2차갑오개혁-제2차김홍집내각에선 친일적, 을미사변 이후 을미개혁-제4차김홍집내각이 구성되었다가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중단되었잖아요 이에 대해 김홍집이란 인물의 평가로 기회주의자라는 평이였는데 요즘엔 다른 나라에 붙어가며 나라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으려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하더라고요. 그 근거로 고종이 있는 러시아대사관까지 김홍집이 온 것을 근거로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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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집은 개화파로서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앞장선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그는 1차 갑오개혁을 주도하며 210여가지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유리해지자 2차 개혁에서 친일적인 박영효와 함께 연립내각을 구성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당시로는 민심 무마를 위해 억지로 세워진 입장이었습니다. 이후 내각에서도 총리 대신으로서 중재자로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1896년 2월 아관파천으로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과정에서 총리대신에서 면직당하고, 정식 재판 없이 격살당하는 처지에 내몰렸습니다. 그는 피신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매국노가 돼서라도 나라를 구하려 했건만..."만이라는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일반적 학계에서는 김홍집을 나라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으려 했던 현실주의적 애국자로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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