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는 왜 신라의 역적이 되었나요?
장보고는 왕을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우고 자신의 딸이 신라의 왕의 아들과 결혼을 하면서 왕과 사돈이 되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역적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염장에게 암살 당하며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삼국사기>에는 "장보고가 왕이 딸을 차비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원한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당시 신라 중앙조정에서는 청해진에서 여전히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장보고의 존재는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가 혼인 문제로 왕실에 앙심을 품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습니다. 염장은 바로 신라 조정에서 내려보낸 자객이었습니다.
염장은 장보고의 쿠데타 당시 함께 종군하며 신무왕을 옹립하는 공을 세운 경력이 있었다. 염장은 왕실을 찾아와 "신의 말을 들어주신다면 한 명의 병졸도 번거롭게 하지 않고 장보고의 목을 베어 바치겠습니다"라고 제안한다. 장보고의 군사력을 두려워했던 신라 조정은 염장의 제안을 수락합니다. 염장은 장보고를 찾아와 청해진에서 일하겠다고 제안했고, 장보고는 함께 뜻을 같이했던 염장을 의심없이 받아들입니다. 방심한 장보고는 술에 취한 채 염장에게 살해 당하고, 한 시대를 풍미한 해상왕의 일대기는 그렇게 비극적인 최후로 막을 내린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841년(혹은 846년),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던 장보고가 돌연 근거지인 청해진에서 염장이라는 인물에 암살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삼국사기>에는 "장보고가 왕이 딸을 차비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원한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당시 신라 중앙조정에서는 청해진에서 여전히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장보고의 존재는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가 혼인 문제로 왕실에 앙심을 품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염장은 바로 신라 조정에서 내려보낸 자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