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잘못 고르신 게 아닙니다. 그 아련한 느낌은 기기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대부분 찍는 조건과 손을 한 번 더 댄 결과에서 나오거든요. 그래서 밝은 낮에 자동으로 놓고 찍으면 이 기종도 꽤 선명하게 나옵니다. 조작을 바꾸면 그 느낌은 충분히 만들 수 있어요.
제일 크게 바뀌는 건 감도입니다. 이 카메라는 감도를 이천까지 올릴 수 있는데, 자동으로 두면 밝은 곳에서 제일 낮은 값에 붙어버려서 깨끗하게 찍힙니다. 이걸 손으로 사백이나 팔백쯤에 고정해두면 옛날 디카 특유의 거친 입자와 색 번짐이 살아납니다.
빛도 바꿔보세요. 낮 창가 대신 저녁 무렵이나 실내 형광등, 백열등 아래에서 찍으면 색이 묘하게 어긋나면서 그 느낌이 납니다. 화이트밸런스를 일부러 상황과 다르게 두는 것도 방법이에요. 실내에서 흐림 모드로 두면 누렇게, 낮에 백열등 모드로 두면 푸르스름하게 뜹니다.
뽀얗게 날아가는 느낌은 플래시와 노출 보정으로 만듭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플래시를 강제로 터뜨리면 얼굴은 하얗게 뜨고 배경만 뚝 떨어져요. 여기에 노출 보정을 조금 밝은 쪽으로 밀면 밝은 부분이 뭉개지면서 아련해집니다.
선명함을 일부러 깎는 방법도 있습니다. 사진 크기를 최대가 아니라 한두 단계 낮게 잡고, 광학 줌을 넘어가는 디지털 줌까지 당겨 찍으면 화질이 자연스럽게 물러집니다. 렌즈 앞에 얇은 비닐이나 스타킹을 한 겹 대고 찍는 옛날 방식도 빛이 번지면서 효과가 좋아요.
마지막으로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인터넷에 올라온 작례 중 상당수는 찍은 뒤에 색을 한 번 더 만진 사진입니다. 그러니 원본이 선명하게 나왔다고 실망하지 마시고, 위 방법으로 최대한 가깝게 찍은 다음 대비를 조금 낮추고 채도를 살짝 빼는 정도만 더해보세요. 그게 제일 빠른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