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시대 교통도 발달 안되고 통신시설도 미비한데 전국에 현장수배가 가능했을까?

조선시대에 교통도 발달이 잘안되고 통시시설도 미비한 상태인데요 전국에 주요 범죄를 알리는 현장수배범을 어떻게 알려섰을까요? 전국 현장수배는 가능했는지요?

    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교통과 통신 시설이 미비하여 전국적인 현장수배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신, 주요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의 관리들이 소식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다른 지역에서도 정보를 공유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교통 및 통신 시설이 미비했기 때문에 전국 단위의 현장 수배가 불가능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전화나 인터넷 등의 통신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범죄 발생 시 해당 지역에서만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전국 단위의 현장 수배는 불가능했으며, 대부분의 사건은 해당 지역의 관청에서 처리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도 용모 파기라는 몽타쥬를 여러 장 그려서 전국에 있는 포청을 통해서 한꺼 번에 파발마를 통해서 유통이 가능 햇을 것 입니다. 지금 으로 따지면 범인의 용모를 인쇄 화 해서 전국에 뿌린는 것과 같은 방법 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용모파기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잡기 위해 용모와 특징을 그린 것으로 한지에 먹으로 그리는데 의금부 나졸들이 붙이고 다녔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오느날의 몽타쥬에 해당하는 용모파기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주로 관아에 소속된 용모화공이 그렸습니다. 중요 범죄자는 이런 용모파기를 그려서 마을 입구나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놓아 신고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