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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매미372
젊은매미37223.05.08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들인가요?

삼국통일을 신리가 하고나서 통일신라시대에 북쪽에 발해라는 나라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발해라는 나라는 고구려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인가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8

    발해는

    대조영이 세운 나라입니다.

    발해의 민족은

    고구려인, 말갈인, 거란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나무위키 발해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발해는 대조영이 건국한 나라입니다. 대조영과 발해 지배층에는 고구려 유민이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통일신라와 적대관계인 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라와 친선관계를 맺고 일본과 교류했습니다.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에 고려의 후손 즉 고구려계승의식을 명확히 했습니다. 당나라에서 신라와 경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당 문화와 고구려 문화를 계승 혹은 수용했습니다. 대다수 피지배층은 말갈인이었는데 말갈부족장을 통해 간접통치를 했습니다. 이런 직접통치력의 한계가 발해의 갑작스런 멸망의 원인으로 보기도 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갱, 난돌, 구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온돌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방바닥을 이루는 넓고 얇은 돌인 구들장을 데우는 방식입니다. 즉 방 바깥의 아궁이에서 발생한 열기가 구들장과 이를 떠받치는 고래둑 사이 빈 통로인 고래를 지나면서 구들장을 데우게 되고, 연기는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온돌의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초기 철기 시대 한반도 북부와 중국 동북 지방,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 걸쳐 살았던 북옥저 사람들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초기의 온돌은 방 한쪽에만 고래와 아궁이를 두고 난방하는 이른바 ‘쪽구들’이었습니다. 쪽구들 방식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는데, 17~18세기에 들어서면서 오늘날처럼 방 전체에 고래를 설치하고 방 바깥의 아궁이에서 불을 때는 방식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위와 같은 온돌의 변천 과정으로 보아 고구려와 발해의 온돌 또한 쪽구들 방식이었음이 틀림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가난한 고구려인은 겨울에 모두 갱, 곧 기다란 구덩이를 만들고 그 아래에 불을 지펴 따뜻하게 하였다는 구당서의 기록이 눈길을 끕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다란 구덩이’는 바로 고래를 가리키는데, 그 아래에 바로 불을 땐다는 점으로 보아 쪽구들 방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수서에서는 말갈인이 흙을 둑과 같이 쌓고 구덩이를 파서 출입구를 위로 낸 다음 사다리를 통해 드나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로 보아 고구려인은 온돌을 이용해 난방을 한 반면, 말갈인은 별도의 난방 시설 없이 땅을 깊게 파는 형태로 하여 지열을 이용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고구려인과 말갈인의 겨울철 주거 방식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은 발해의 종족 구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발해의 영역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수많은 온돌 유적이 확인되었습니다. 우선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 용천부의 궁성 서쪽 침전 터에서 모두 7개의 온돌 시설이 발굴되었고 북한 함경남도 신포시 오매리에서도 온돌 유적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노보고르데예프카, 스타로렌첸카, 코르사코프카, 콘스탄티노프카 유적 등에서도 온돌이 발굴되었고, 나아가 발해 유민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여겨지는 아나니예프카 유적에서도 온돌이 발견되었습니다.

    말갈인이 땅 속에 구덩이를 파고 생활하였다는 수서의 기록을 참고하면, 발해의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확인되는 온돌 유구는 말갈인이 아니라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발해의 유적에서 발굴된 온돌 유구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였음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물질적 증거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 발해 문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고려 계승을 표방함.(장수왕때부터 고구려를 고려로 표현)

    2. 발해 건국의 주체가 영주 지역에서 이동한 고구려 유민들이 주체가 되어서 건국한 점 (지배계층의 같다)

    3. 문화, 무덤 양식의 유사성. (고분 모줄임양식, 이불병좌상, 석등등)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본과의 교섭에서 발해왕실은 발해고구려 계승국이라는 입장을 취 ... 한편 발해 전 시기를 통하여 발해인이 스스로 말갈족의 후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