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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따운안경곰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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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4대왕인 폐왕에 대해 궁금합니다

발해의 4대왕인 폐왕은

즉위한지 1년도 되지 않아서 시해를 당했다고 하던데

폐왕의 시해는 어떤 인물들이 한 것이고

어떠한 이유로 시해를 한 것인가요?


발해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서

나름대로 찾아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발해의 폐왕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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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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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사실상 '폭정 or 학정' 즉, 조선의 연산군이나 고구려의 5대 왕이었던 모본왕과 같은 행보를 보이자 시해를 했다고 볼 수 있으며, 외부 세력이 아닌 내부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는 <구당서>와 <신당서>를 통해 전해지는 내용입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발해 폐왕인 대원의는 문왕의 태자인 대굉림(大宏臨)이 일찍 죽자 문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대원의의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어 부친, 가족에 대해 알 수 없다네요.

    그는 시기심이 많고 성질이 포악해 신하들에게 793년 시해되었다고 “대원의가 폭정을 하자 국인(國人)이 앙심을 품고 그를 죽였다.”라고 <구당서>, <신당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굉림의 아들인 성왕이 즉위합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폐왕과 같은 경우 성질이 포악하고 시기심이 많아 끝내 신하(국인 - 귀족 세력)들의 반발로 인하여 시해당하는 비운을 맞는다고 알려졌으나 정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기록이 적어 알 수 없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왕 대흠무가 죽은 후 원래 태자인 대굉림이 이어받아야 했으나 대굉림은 일찍 사망, 그 동생으로 확인되는 대정알은 당나라에 숙위로 가있었으며 대굉림의 아들인 대화여는 알수 없는 이유로 계승을 하지 않아 족제인 대원의가 왕위에 오릅니다.

    아들과 손자들이 다수 존재했음에도 족제라는 불분명한 인물이 즉위, 일반적으로 12촌 이상의 친척부터 족-을 붙여 표현하는데 당시에도 족제를 같은 의미로 쓰였는지 알수 없으나 문왕 말기 왕위 계승 다툼이 있었으므로 이 사태가 일어난 것으로 추측합니다.

    성질이 포악하고 시기심이 많아 신하들의 반발로 시해당했습니다.

    대원의 시해의 뒷배경에 문왕의 막대아들이자 제 6대 왕인 대숭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 문왕이 동경용원부로 천도한 지 얼마되지 않아 사망하고 폐왕 사후 다시 상경용천부로 천도한 점으로 폐왕은 발해의 수도 중 하나인 동경용원부를 세력 기반으로 삼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며 공식적인 국왕이 아닌 공위 시대를 이끈 임시 국왕일 수도 있습니다. 성왕 시기 나오는 왕자 대청윤을 사신으로 보낸 기록은 대원의가 보냈을 가능성이 높으며 대원의가 시해당한 후 왕위는 대굉림의 아들 대화여가 이어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