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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천문은 왕실만 공부할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숙련된개미핥기51입니다. 역사적으로 천문은 국가에서 주관했던거 같은데 이러한 천문에대한 공부는 왕실에서만 공부를 할 수 있었나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순수한낙타174
      순수한낙타174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관상감에 근무하던 천문학자들은 조를 편성해 낮과 밤으로 교대 근무를 하면서 천문과 기상을 관측했다. 이들이 작성한 관측일지는 날마다 국왕, 왕세자, 정승, 승정원 등에 날마다 제출됐다. 또한 6개월마다 관측 일지를 베껴서 『천변초출』 또는 『천변초출기』라는 자료집이 편찬됐고, 또한 그 해의 주요 천문 현상은 따로 베껴서 현상별로 『천변등록』을 작성했다.
      이러한 관측 보고서들은 승정원에 제출돼 『승정원일기』에 실리고, 나중에 국왕이 승하한 후 『조선왕조실록』을 작성할 때 그 안에 요약돼 실리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많은 천문 관측 기록이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천문은 축적된 자료와 기술이 필요했던 학문으로 개인이 혼자 연구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국가에서 주도하였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의 왕실은 천문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천문학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였고 그래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왕명에 따라 천문학을 연구 할 수 있었지요. 조선 초기 이순지와 김담은 조선의 독자적 역법과 자주적인 천문학 체계를 세우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이후 연산군 10년 처음으로 한글로 된 역서의 간행이 계획되고 번역을 하는 등 역서의 보급이 일반화되었다고 합니다.하지만 성종 대 이후 차츰 침체 하기 시작한 조선의 천문학은 선조 대에 이르러 임진왜란을 겪고 난 후 더욱 급격히 침체화 되었다고 합니다. 독자적 역법의 계산이 점점 어려워진 것은 예상된 일이었다고 하지요.그렇지만 이순지와 김담의 업적은 실로 대단합니다. 조선 초에는 대개 문과에 합격한 사람이 각자의 의사에 따르거나 왕명에 따라 천문, 역산을 공부하고 연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두 사람은 그 중에서도 조선 초 최대의 천문학자로 많은 저술을 남겼고, 이것이 조선 천문학의 기반이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