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헤이그 특사들은 헤이그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한 것인가요?

을사늑약 이후 고종은 헤이그 특사를 비밀리에 파견하는데, 특사들은 헤이그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 했고, 파견 했다는 것을 일본이 알고 있었다는데, 배경이 되는 사건의 내용들을 알려주세요.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좋은 질문입니다.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07년 6월 만국 평화 회의를 이용하려 하였습니다. 특히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소집하는 제 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되고 이회에 참석하면 국제적으로 주권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일본의 침략 야욕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즉, 이 회의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해 을사늑약의 무효와 대한제국의 자주독립국을 각국 대표단에게 알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헤이그 도착하였으나 이미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고, 대한제국 특사 자리는 없었습니다. 특사들은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정식 초정장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회의장 입장 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러시아와 태세 전환과 일본의 영향 때문입니다. 특히 일본은 헤이그에서 외교 관계를 활용하여 특사들의 회의 참석을 방해한 것입니다. 단 한 명의 아군도 얻지 못한 특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세계 언론을 향해 대한제국의 현실을 호소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7월, 특사 중 한 사람이었던 이준은 헤이그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즉, 헤이그 특사들은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일본의 방해와 열강들의 외면으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은 고종의 강제 퇴위되고, 일제의 침략이 더 노골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