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과 소통한다는 월대란 무엇인가요?
뉴스를 보니 조선시대 월대란 말이 나오던데 왕과 소통하는 내용이 나오던데 정확히 월대는 어떤 역활을 했고 효과는 어땟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궁궐의 정전과 같은 중요한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를 말합니다.
궁중의 각종 행사가 있을 때 이용됩니다. 대개 방형의 넓은 단(壇)으로, 그 위에 지붕이나 다른 시설을 하지 않습니다. 월견대(月見臺) 즉 달을 바라보는 대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월대는 궁궐에서의 하례(賀禮)·가례(嘉禮)와 같은 큰 행사 때 사람들이 올라서서 행사에 참여하는 데 이용되며 제례(祭禮) 때에도 이용됩니다.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의 월대는 내정전의 월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곳은 주로 왕대비를 위한 하례나 가례 때에 이용되던 곳이다. 따라서 그 규모나 형식은 작고 간소하다. <동궐도 東闕圖>에 묘사된 바로는 평상시에 대조전 월대에는 장벽(帳壁)을 둘러 시선을 차단하도록 하였다. 종묘 정전의 월대는 조선시대의 월대 가운데 가장 장대(壯大)한 것으로 꼽힌다.
종묘 정전은 본래 정면 7칸으로 지어졌지만 봉안해야 할 역대 임금의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도 옆으로 계속 증축하게 되어 마지막에는 19칸의 긴 건물이 되었는데 이에 따라 건물 앞의 월대 역시 규모가 확장되어 장대한 규모로 되었다. 상하 2중으로 구성되었으며 바닥에는 전면에 박석이 치밀하게 깔려 종묘 정전의 엄숙한 건축구성과 함께 일대 장관을 이룬다.
이 월대에서는 제례가 거행될 때 이른바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으로 알려진 <보태평 保太平>과 <정대업 定大業>의 음악이 연주되고 춤이 벌어지는데 여기에는 각종 악공과 무인(舞人) 들이 동원되어 월대를 가득 메우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월대 [月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월대(月臺)는 궁궐의 중요한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으로,
궁중의 각종 행사가 있을 때 사용된 공간입니다.
광화문 정문 앞 월대는 왕이 궁궐을 출입하면서 백성과 만나던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백성은 왕의 어가(御駕) 앞에서 상소를 올리고 왕은 백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왕과 백성의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했던 소통의 공간입니다.
하지만 1920년대 일제에 의해 철거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묻혔습니다.
최근 광화문 광장 복원 사업을 하면서 현재 10미터 정도 복원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월대란?
궁궐의 정전과 같은 중요한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
궁중의 각종 행사가 있을 때 이용된다. 대개 방형의 넓은 단(壇)으로, 그 위에
지붕이나 다른 시설을 하지 않는다.
월견대(月見臺) 즉 달을 바라보는
대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월대는
궁궐에서의 하례(賀禮)·가례(嘉禮)와
같은 큰 행사 때 사람들이 올라서서
행사에 참여하는 데 이용되며 제례(祭禮) 때에도 이용된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월대는 궁궐의 정전과 같은 중요한 건물 앞에 설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 를 뜻합니다.
궁중의 각종 행사가 있을 때 이용되며 대개 방형의 넓은 단으로 그 위에 지붕이나 다른 시설을 하지 않습니다.
대개 월대는 궁궐에서 하례, 가례와 같은 큰 행사때 사람들이 올라서서 행사에 참여하는데 이용되며 제례 때에도 이용됩니다.
월대는 공통적으로 건물의 전면에 놓이며 대개 장방형으로 그 높이는 약 1m전후이며 2단으로 구성되는 경우도 있고, 장대석을 가지런히 쌓아 올려 벽면을 구성하고 상부는 전이나 박석을 깔며 모서리에 향로, 드므를 올려놓기도 합니다.
경복궁 근정전의 월대는 상하2중으로 구성되고 근정전 건물의 동서남 3면에 걸쳐 마련되었는데 특히 남쪽의 정면 계단에는 상하에 각각 봉황새를 새긴 답도를 두고 층계석에도 당초무늬를 새겼으며 상하 각 월대의 가장자리에는 돌난간을 사방에 두르고 난간기둥 머리에는 십이지에 해당하는 짐승조각을 새겼습니다.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근정전의 월대에는 정초나 동지를 맞아 문무백관이 왕에게 하례를 올릴때 종친과 시신, 그리고 악공이 전면 월대의 위아래에 자리잡고 좌우 측면의 월대에는 수직하는 군사가 호위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창덕궁 대조전의 월대는 내정전의 월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곳은 주로 왕대비를 위한 하례나 가례 때 이용되던곳이기 때문에 규모나 형식은 작고 간소하며 동궐도에 묘사된 바로는 평상시에 대조전 월대에는 장벽을 둘러 시선을 차단하도록 하였고 종묘 정전의 월대는 조선시대의 월대 가운데 가장 장대한 것으로 꼽힙니다.
종묘 정전은 본래 정면 7칸으로 지었지만 봉안해야 할 역대 임금의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도 옆으로 계속 증축하게 되어 마지막 19칸의 긴 건물이 되었으므로 건물 앞의 월대 역시 규모가 확장되어 장대한 규모가 되었고 상하 2중으로 구성되었으며 바닥에는 전면에 박석이 치밀하게 깔려 종묘 정전의 엄숙한 건축구성과 함께 일대 장관을 이룹니다.
이 월대에서는 제례가 거행될 때 이른바 종묘제례악으로 알려진 보태평, 정대업의 음악이 연주되고 춤이 벌어지는데 여기에는 각종 악공과 무인들이 동원되어 월대를 가득 메우게 됩니다.
세종실록을 보면 금후로는 광화문에 부녀자 출입을 금하고 영제교 뜰과 근정전 뜰에도 또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
라는 기록을 보아 소통의 공간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
안녕하세요. 조선시대의 월대는 왕과 백성들 사이의 소통을 중재하고,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안전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월대는 월당이라고도 불리며, 지역별로 선발되어 일정 기간 동안 월당으로서 활동했습니다.
월대의 역할은 다양했습니다. 첫째, 왕의 명령과 권고를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반대 의견이나 불만을 수렴하여 왕권의 신뢰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둘째, 백성들의 사회적, 경제적, 법적 문제를 중재하고 해결하여 사회 안정을 유지하며, 분쟁을 조정하여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셋째, 재해, 전쟁, 기근 등의 비상사태에서는 백성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월대는 위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조선시대의 국가 안정과 사회 안전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월대의 활동은 백성들의 불만이나 갈등을 조정하여 사회적 혼란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월대의 역할은 조선시대의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번영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월대는 지식과 정보를 보존하고 세대를 넘어 전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조선 왕조의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그 기록 보관소는 역사 작성, 족보 편집, 법적 분쟁 해결과 같은 다양한 목적을 위해 학자, 관리 및 왕실 구성원이 참조했습니다.월대에는 기록의 무결성과 보안 유지를 담당하는 훈련된 공무원 팀이 배치되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요청에 따라 문서 사본을 생성하고 공식 역사와 연대기를 편집하고 편집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월대는 어떤 사람을 이야기를 하는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궁전 앞에 있는 계단 같은곳을 이야기를 하는겁니다.
왕은 위에 있고 신하들은 아래에 있는 그 계단을 월대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