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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한잔
아메리카노한잔23.08.14

고려후기 원나라가 세운 쌍성총관부는 무엇인가요?

고려후기에 원나라가 고려의 화주(영흥) 이북에 설치한 기구인 관아 기관인 쌍성총관부는 어떠한 무엇을 하였던 기관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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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1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쌍성총관부는 고려 고종때 몽골이 1258년 12월~1356년 7월까지 고려의 동북면에 설치하고 운영하던 통치기구입니다.

    원간섭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고려인 조휘와 탁청의 몽골 투항을 계기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으며, 화주에서 정주에 이르는 지역을 관할하였습니다. 고려 영토를 몽골이 분할 점령하고 통치기구를 두었던 또 다른 사례로 동녕부를 들 수 있는데, 동녕부가 설치된 지 20년 만에 평화적으로 반환되었던 것과 달리 쌍성총관부는 원간섭기 내내 존속하였습니다. 결국 반원개혁의 일환으로 공민왕이 무력 정벌을 단행한 이후에야 비로소 쌍성총관부는 고려에서 축출됩니다. 쌍성총관부는 그 치폐의 과정에서 드러나듯 원간섭기 질곡의 역사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원나라의 관청으로 1258년 원나라가 고려의 내정간섭을 위해 화주지방을 점령하고 설치한 관청입니다.

    1258년 몽골군이 천리 장성을 넘어 쳐들어오자 화주 지역의 세력가들은 고려의 장수를 죽이고 몽골에 항복, 몽골은 이 지역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고 항복한 세력가들에게 천호 라는 벼슬을 주었는데 천호는 1000개의 집을 다스리는 관리라는 뜻으로 이로써 철령 이북 지역은 사실상 몽골의 차지가 됩니다.

    고려 조정은 몽골에 대항했지만 결국 강화를 맺었고 1270년 항쟁의 중심이었던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수도를 옮긴 뒤부터 원의 간섭을 받는 처지가 되었으며 후 원 간섭기동안 쌍성총관부는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원에 협력했던 지역 가문들이 고려 조정의 명령을 받지 않고 이 지역을 독립적으로 다스렸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후기 몽고가 고려의 화주(지금의 함경도 영흥)를 직접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관부로 고려와 몽고 간의 전쟁 중에 설치되었다가 공민왕 때 폐지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쌍성총관부는 1258년(고종 45년)에

    원나라가 화주(和州)에 설치한

    통치기구이다. 쌍성총관부는 동녕부

    와 함께 고려인의 배반으로 몽골의

    직속령이 되는 영토라는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