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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호저172
까칠한호저172

과거에는 왕의 몸에 의료목적이라도 칼을 댈 수 없었나요?

어떤 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기가 나서 칼로 째고 짜기만 하면 살 수 있었지만 왕의 몸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칼을 댈 수 없다는 원칙으로 방치해서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의료목적이라도 칼을 댈 수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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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예리한밀잠자리144
      예리한밀잠자리144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명성황후의 아들이 항문이 없는데도 대원군이 칼을 대지 못하게 해서 죽은 건 사실입니다. 대원군은 자신의 손자에게 산삼을 달여 마시게 했죠. 결과적으로 아이는 죽게 되는데 이에 민비는 대원군이 일부러 자산의 자식을 죽이고 대원군이 정권을 길게 쥘려는 음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성황후와 대원군 사이의 관계가 나빠지게 된 한 계기 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 시대엔 서양의술이라는 개념이 없었을테고 게다가 왕의 몸에 감히 칼을 댈 생각은 못했겠죠... 제 생각엔

    • 의료목적이라도 칼을 댈 수 없다는 원칙은 없었습니다.

      왕은 소위 옥체를 보전해야 한다는 원칙은 있었습니다.

      음식에 독이 있는가를 시음과 시식을 통해 확인할 정도였으니까

      왕의 몸에 난 종기도 마찬가집니다.

      종기를 치료하는 어의는 왕의 몸에 칼을 대었다가 자칫 종기가 악화해

      왕이 세상을 떠나기라도 한다면

      본인도 죽음을 면키 어렵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을 것입니다.

      조선의 왕 문종과 정조, 두 왕은 종기로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 과거에는 왕의 몸에 대한 의료적 수술을 할 때도 칼을 댈 수 없었습니다. 이는 왕의 몸에 상처가 생길 경우 그 영혼이 나가버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시 의료 수술은 칼이 아닌 철사나 바늘, 또는 불, 물 등을 이용하여 수술을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수술을 시도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생존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수술로 인해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당시의 의학적 지식 수준에서 가능한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에 사용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양 의술이 들어 오기 전까지 동양 의술에서는 침과 뜸 그리고 한약을 다려 마시는 방법외에는 다른 시술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왕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신분의 고하를 떠나서 몸에 칼을 댄다는 것 자체가 용납이 안되는 시절 이였지요.

    • 안녕하세요. 이야기의 배경과 시대, 그리고 왕의 규칙 등에 따라서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고대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의료의 목적으로 칼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언급한 왕의 경우, 그가 칼로 짜서 살 수 있었음에도 칼을 대지 않았다는 것은 국가 권력자로서 그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시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그 왕이 어떤 질병이나 상태로 인해 칼로 치료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이야기가 전설이나 실제 사실인지, 혹은 작가의 창작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왕에게 칼을 댄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였으며

      의술 역시도 서양식으로 찢어서 하는 수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