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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비둘기23.03.04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이유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영조는 조선시대 가장 길게 왕권을 잡은 왕이자 자신을 아들을 뒤주에 가둬서 죽인 인물입니다. 추후에는 자신이 아들을 죽인것이 잘못된선택임을 깨닫고 아들에 묘에서 사과를 했다고 들었는데요

영조가 어떠한 이유로 자신의 아들을 뒤주에 가둬서 죽이게 된것인지 궁금하여 질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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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0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영조는 40세가 넘어 사도세자라 불리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사도세자를 세자로 책봉했습니다.

    그러나 어린 사도세자에게는 나랏일이 너무 힘들었고 아버지인 영조에게 많이 혼났습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는 조정이 노론과 소론이라 하는 2개의 파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 당시 사도세자는 노론과 적대적이었고 소론과 가까웠습니다.

    그러니 사도세자가 영조의 눈 밖에 난 것은 노론에게 기회였답니다. 후에 영조는 세자가 왕이 될 수 있는 그릇인지 시험해보기 위해 세자에게 왕위를 잠시 물려줍니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궐을 나가버립니다.

    사도세자가 나가있는 동안 노론은 사도세자가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상소문을 영조에게 지속적으로 올렸고 결국 영조는 왕실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역모를 꾀했다는 죄목으로 사도세자를 8일 동안 뒤주에 가둬 죽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영조는 이 일을 크게 후회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간신배들의 수소문을 듣고 죽인 것입니다.


    아무리 그게 거짓이라는걸 알더라도


    자기가 세운 법에 걸리니 어쩔 수 없었죠.


    공의로 행하였기 때문에 죽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눈으로 아들이 죽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에 뒤주에 넣어 죽인 듯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영조는 42살에야 겨우 아들을 얻었고 영조는 너무나도 귀한 늦둥이 아들, 사도세자를 곧바로 왕세자로 책봉했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과도한 스트레스와 애정결핍에 시달린 세자는 온갖 기행을 저질렀습니다.

    끝내 사도세자는 영조의 명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고 맙니다.

    영조에게는 모두 6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복이 없어서 영조의 나이 42살에야 아들을 얻어요(첫째 아들인 효장세자는 병으로 일찍 죽었습니다). 늘그막에 얻은 너무나도 귀한 아들이라 영조는 이듬해 그 아이를 왕세자로 책봉합니다. 그가 바로 사도세자죠.

    하지만 그는 왕이 되지 못하고 죽습니다. 사고나 질병으로 죽은 게 아니라 아버지인 왕 영조의 명령에 의해서 굶어죽게 돼요. 심지어 쌀 항아리인 뒤주에 갇혀 죽게 되죠. 뒤주는 사진으로 보기에도 굉장히 작아보이죠? 겨우 성인 남성 한 명이 무릎을 구부리고 있을 수 있는 정도의 공간입니다. 사도세자는 이 뒤주에 8일 동안 갇혀 있다 아사했습니다. 왕족인데 굶어죽다니 엄청난 비극이죠.

    [네이버 지식백과] 사도세자 - 아버지의 명령으로 뒤주에서 굶어 죽다 (이다지 한국사 : 전근대 편, 2015. 12. 11., 이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