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회답겸쇄환사에대해서 궁금합니다.

회답겸쇄환사라는 말을 왜 기유약조 체결하고도 쓰게된건가요? 아직 그 일본을 못 믿겠어서 그런건가요 그러면 언제부터 통신사라고 쓰게된건가요? 또 통신사는 임진왜란 전에도 있었던거 맞나요?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회답겸쇄환사는 임진왜란 직후 일본의 새로운 도쿠가와 막부이 요청에 따라 일본에 파견된 사절단을 말합니다. 회답겸쇄환사는 일본의 국서에 답장을 보내고 회답, 그리고 조선인 포로를 데려오는 쇠환을 위한 사절(3차례)입니다. 이는 당시 사절의 핵심 임무가 평화 회복과 함께 전쟁 때 끌려간 조선 포로 송환이었기 때문입니다.

    통신사가 아닌 것은 ‘통신사’의 ‘통신’은 서로 믿음을 나누고 교류한다는 의미입니다. 조선은 도쿠가와 막부가 새로 들어선 뒤에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을 바로 신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유약조로 무역과 국교가 사실상 재개되었어도 외교 관계가 완전히 정상화하여지 못해 일시적으로 '회답겸쇄환사'로 파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1636년(인조 14년) 사행부터 다시 ‘통신사’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이후 1811년까지 통신사는 총 9회 파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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