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호란(1627)은 인조 반정 이후 서인 집권 세력들의 친명배금 정책, 명나라 장수 모문룡의 가도 주둔, 그리고 이괄의 난을 구실로 후금군 3~5만이 침략했습니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하여 크게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형제의 맹약을 맺고 돌아갔습니다.
반면 병자호란(1636)은 후금이 청으로 국호를 변경하고, 조선에 사대를 요구했으나 서인 정권의 거부로 침략했습니다. 청군 12만이 삽시간에 한양을 행해 침략하자 인조는 강화도로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했으나 2개월만에 항복하여 군신 관계를 체결하였습니다. 특히 삼전도 굴욕의 치욕적인 항복 의식을 했으며,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인질, 30~60만명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