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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태양새285
탁월한태양새285

풍수지리설을 주장한 도선에 대한 질문

안녕하세요

예전 삼국시대를 거쳐서 풍수지리설을 주장한 도선에 대한건데요

풍수지리설을 주장했는 걸로 봐서 사주,점성술에 조예가 깊었던것 같은데

실제로 앞날을 예언하는 신통력도 대단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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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선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도선비기』, 『송악명당기』, 『도선답산가』 등을 저술한 승려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도선은 당나라로 유학가서 밀교승려 일행(一行)으로부터 풍수학을 배워왔다고 한다. 그러나 일행은 당나라 초기의 승려이고 도선의 생몰년은 당나라 말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연대에 모순이 있고, 도선이 당나라에 유학하였다는 것도 신빙성이 없다.

      도선은 승려로서보다는 음양풍수설의 대가로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나라 풍수지리학의 역사가 신라 말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것도 도선의 생존연대가 그때였기 때문이다.

      언제나 도선이 풍수지리설 같은 주술적 언어와 함께 있기 때문에, 그는 역사적 실재의 인물이라기보다는 신화적 존재로 파악되기까지 하였다. 도선이 역사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고려 태조에 의해서였다.

      875년(헌강왕 1) 도선은 “지금부터 2년 뒤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고 하였는데, 그 예언대로 송악에서 태조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 예언 때문에 태조 이후의 고려왕들은 그를 극진히 존경하였다.

      태조는 도선으로부터 직접 설법을 들은 일은 없으나 사상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태조는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온 민간신앙도 보호하고 육성하면서, 동시에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있던 『도선비기(道詵秘記)』에 관해서도 대단한 관심을 쏟았다.

      그는 불교신앙에서 오는 가호의 힘과 함께 참위설에서 얻어지는 힘에 의지함으로써 그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달성하려 하였다. 그래서 『훈요십조』 가운데 제2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 사원은 모두 도선이 산수의 순역(順逆)을 점쳐서 정한 자리에 개창한 것이다. 도선은 일찍이 ‘내가 점쳐서 정한 곳 이외 함부로 사원을 세우면 지덕(地德)을 손상하여 국운이 길하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생각컨대, 국왕·공주·왕비·조신들이 서로 원당(願堂)이라 하여 사원을 마음대로 창건한다면 큰 근심거리가 될 것이다. 신라 말엽에 사찰을 함부로 이곳저곳에 세웠기 때문에 지덕을 손상하여 나라가 멸망하였으니 경계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도선이 산천의 지세를 점쳐서 결정한 자리에 세워진 절이나 탑을 비보사탑(裨補寺塔)이라고 하였다. 도선의 저서라고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는 『도선비기』·『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선 [道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표적으로 왕건의 탄생을 예언했다고 합니다.

      신통력이 있어 고려사나 삼국유사 야사에 많은 기록들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선은 864년부터 전라남도 광양군 옥룡사에 자리를 잡고 후학들을 양성했는데 언제나 제자 수백병이 모여들어 그의 강론을 들었다고 하며 명성이 높아 당시 신라의 임금인 헌강왕이 도선의 명성을 듣고 궁궐로 초빙해 직접 법문을 들었을 정도였다고 하며, 도선대사가 예언가로 역사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고려 태조 왕건의 탄생을 에언했다는 것입니다.

      도선대사의 예언대로 송악에서 고려 태조 왕건이 태어났다고 하며 이 풍수지리에 대한 부분이 매우 유명하고 도선대사라는 사람이 전설적인 고승이다보니 도선대사의 풍수지리에 관한 이야기들과 도선대사에 대한 야사들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도선이 지었다는 예언서 도선비기에는 조선왕조 건국 이후의 사실들도 예언이 되었고, 조선왕조는 이를 껄끄럽게 여겨 조선왕조실록 세조3년 5월 26일자에 팔도 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등 문서를 사처에서 간직하지 말라 고 명했다는 기사가 있고 그 외 실록에는 성종 즉위년 12월 9일자 성종은 도선이 썼다고 하는 도선비기를 전국에서 압수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검증되지 않은것으로 역사와 가치를 과장하기 위한 허구이며, 도선 본인이 쓴 책들이 현재 실물로 전해지는게 없어 확인이 안되며 야사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라 신빙성은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