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조선초기 도화원과 성종이후 도화서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고려시대부터 조선초기까지 존재하던 도화원은
그림과 관계된 기관이라 알고 있습니다
성종 이후 도화원에서 도화서로 기관의 명칭을 바꿨는데
이는 곧 격하된 것과 같다고 하더라구요
도화원과 도화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점이 있고
어떤 점들 때문에 도화원에서 도화서로의 명칭변겨이 격하되었다고 평가하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화원과 도화서 모두 그림그리는 화가들을 양성하는 국가 기관입니다. 즉 같은 기관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도화원이였으나 그림 그리는 일의 중요도가 폄하되면서 도화서로 격하 당했습니다.
조선시대 화원이란 궁중작화기관인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된 궁중화가이며 동시에 직업화가로 활동했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중앙 관청으로서의 도화원이 있었으나 서경(지금의 평양)에는 지방관청의 하나로 설치되었던 기록이 보입니다. 조선 시대에 있어서의 도화원은 건국 초기부터 이미 설치되어 있었음이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됩니다. 1400년(정종 2)에 용관(冗官)의 도태(淘汰)문제와 관련하여서 상림원(上林院)·상서원(尙書院)과 함께 도화원의 이름도 열거되어 있는 것을 보면 도화원이 그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여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도화원이 화원의 신분이 도화서로 되면서 종 5품직이 종 6품직으로 한단계 낮아진 이유는 조선 왕조 실록에서 보여 지는데 세조 1년 을해(1455) 이조 에서 세조 에게 고하기를 화원(畫員)은 기구를 만드는 공장(工匠)과 다를 것이 없어서 도화원의 화원을 별좌에 임명하지 말도록 청하였고 세조는 이를 받아 들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