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수도는 졸본, 그리고 국내성, 마지막에는 평양성으로 하였습니다. 평양 천도는 427년 장수왕이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겼습니다.
평양 천도는 단순히 수도 이전이 아니라 국가 운영 방식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국내성은 방어에는 유리하나 땅이 좁고, 북쪽에 치우쳐 있어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반면 평양은 대동강 유역으로 평야가 발달하여 경제 기반이 강했으며, 교통에도 유리했습니다. 특히 남진정책에 유리한 지역이었습니다.
또한 국내성에 오랫동안 뿌리 내린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도가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평양 천도는 고구려가 만주 중심의 방어형 국가에서 한반도까지 아우르려는 공격적, 확장형 국가의 변모이며, 남진 정책을 위해서입니다. 또한 국내성의 재지 귀족을 약화시키고, 왕권 강화를 위한 정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