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선은 당시 정치적 요인이 가장 큽니다. 영조는 노론의 지지를 받아 국왕으로 즉위한 인물이었으며, 측근 세력도 노론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영조는 형 경종의 독살설로 소론들에게 의심을 받고 있었는데, 사도세자가 '선대왕의 원수를 갚겠다'라는 발언을하자 영조와 노론에게 위협이 된 것입니다. 특히 1762년 나경언이 사도세자의 비행과 반역 음모를 고변하면서 영조에게 결정적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영조와 사도세자의 상반된 성격도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요소입니다. 자유분방한 사도세자에게 영조의 엄격함과 충돌한 것입니다.
즉, 영조의 정통성 컴플렉스, 노론 세력의 정치적 모함, 그리고 사도세자의 정신적 불안감과 일탈, 부자간의 성격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사도세자의 죽음을 이르게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