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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불독44
냉철한불독4423.04.28

조선시대 인쇄기술 발달이 백성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우리나라는 옛부터 인쇄기술이 발달한 나라로 인정받아 왔는데요. 그러면 조선시대 인쇄기술 발달이 백성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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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인쇄를 할 때에 그냥 손으로 베꼈습니다. 그러나 손으로 베끼는 것은

    무척 힘들고, 또 정확도도 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판화를 발명했습니다.

    판화라고 하면 쉬운 고무판화를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이 때의 판화는 목판화(나무판화)였습니다.

    목판화는 나무를 깎아서 만드는데, 거기에 손이 많이 갔지만 훨씬 더 편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죠. 한가지밖에 찍을 수 없고, 습기에도 약하고, 무겁고...

    그래서 움직이는 글자라는 뜻을 가진 활자를 만들었습니다. 활자는 각 규격에 맞추어서 일정한 크기의 판에

    글자를 새기는 방식으로 하여서 만듭니다. 이렇게 하면 다양한 내용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활자의 시초는 바로 목활자(나무활자)였는데요,

    목판화와 마찬가지로 나무를 깎아서 만들었습니다. 전보다 편리해지긴 했지만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좀 더 발전한 진흙활자를 만드려는 시도를 했으나 오히려 더 불편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다른 바 없이 목활자(나무활자)를 사용하였습니다.

    목활자는 한 번 깎으면 여러 번 쓸 수 있기는 했지만 몇 번 쓰면 갈라지고 습기에 약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조상님들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셨습니다.

    금속활자는 계미자를 만들었지만 모양도 예쁘지 않고 또한 약간 맞지 않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세종대왕 시대에 갑인자를 새로 만들었는데 모양도 예쁘고 틀에도 잘 맞춰지는 등

    계미자나 목활자에 비해서 훨씬 더 쓰기에 편하고 좋았습니다.

    조선에는 주자소가 있어서 활자를 전문적으로 만들어내고 더 편하고 빠르게 책을 찍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겨레과학>을 보세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