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데이비슨 회사의 역사를 알고싶습니다.
오토바이를 넘어 거의 차량에 가까운 배기량과 덩치 금액을 자랑하는 할리데이비슨은 전세계적으로 마니아층이 두텁다고 알고있습니다.
이런 할리데이비슨 회사의 역사에대해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할리데이비슨은 미국 밀워키에서 1903년에 설립한 회사로써 모터싸이클만 전문적으로 만들던 회사입니다.
창업자 두 명의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3년 미국의 윌리엄 실베스터 할리와 아서 데이비슨이 공동 창업하여 각각의 이름을 따 할리 데이비슨이라 지었으며 허름한 창고에서 제품을 만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상품이 팔리고 공장도 확장하면서 1909년에 지금의 할리 데이비슨의 상징이기도한 45도 협각의 V트윈 엔진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큰 인기를 쓸었던 더트 트랙 레이스의 절대강자로, 각종 레이스에서 많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 이탈리아나 영국의 모터사이들을 상대해야해서 레이스에 사용되었던 바이크들이 지금은 스포스터 시리즈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있습니다.
할리는 1960년대 가격이 싸고 엄청난 성능을 자랑한 일본제 바이크의 공습으로 주가가 떨어져 레조용품회사인 AMF에 매각되기도 했습니다.
AMF산하에서 기존에 만들던 대배기량 바이크를 포기하고 소배기량 모델 개발에 주력하면서 스쿠터를 만들기도했는데 때문에 기존의 고객마저 외면하여 사라질뻔했으나 경영진들의 노력으로 다시 경영권을 되찾고 할리 데이비슨만의 독특한 문화를 전파할 HOG를 설립, 그게 맞는 모터사이클을 개발하여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이 시기 개발된 소프테일 시리즈의공헌이 컸습니다.
이후 뷰엘의 등장으로 할리 엔진을 장착한 미국의 슈퍼바이크를 만들었던 전력도 있어 스포스터 엔진을 기반으로 흡배기 부분에서 크게 성능을 향상한 XB를 기반으로 스포츠 바이크 시장에도 진출하게 되지만 이 부분은 실패경험을 축적하는 계기가 됩니다.
2000년대 중반 유로 기준의 배기가스 제한이 세계적으로 채용되며 대부분이 공랭식 바이크는 재앙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공랭 스포츠 바이크계는 BMW,모토구치 등 일부의 기준 통과치를 기대할수 있는 메이커를 제외하고 거의 전멸합니다.
이시기는 할리 데이비슨이 막 수랭 레볼루션 엔진을 채용하던 시점이었지만 이 채용 혜택이 뷰엘에게는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2000년대 말 뷰엘사는 로택스사의 엔진을 장착한 수랭 스포츠 바이크를 출시, 이미 이 시점에서 비슷한 계열 바이크를 생산하던 유럽회사들인 KTM,두카티, 아프릴리아 사의 제품군과 비교하기엔 떨어지는 성능이었고, 때문에 마케팅엔 실패하고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회사 정도가되기 때문에 2000년 말 엽 마지막으로 나온 수랭식 모델을 끝으로 뷰엘사는 할리 역사 뒤로 사라지며 이후 창립자인 에릭 뷰엘이 독립하여 EBR모터사이클에서 뷰엘이 디자인한 프레임을 기반으로 한 스포츠 바이크를 제작하여 판매중이고, 소량 하이엔드 컨셉으로 사실상 두카티나 KTM와 비교할만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뷰엘의 이탈 이후 , 할리는 그 공백을 메꾸고자 XB시리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XR1200을 발매하지만 판매고를 거두지는 못하게 되고, 2011년을 마지막으로 미국 시장에서는 단종되어 유럽, 아이사 시장에만 소량제작의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부터인지 바뀐 소비자의 기호를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전략들이 실행되고, 현재 수랭식 미들급 바이크인 스트리트 시리즈와 전기 바이크 컵셉의 시승회 등을 기점으로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로 서서히 전환중입니다.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할리데이비슨은 미국의 모터 싸이클 제조 회사이자 브랜드 명인데 "윌리엄 S 할리"와 "아서 데이비드슨"이 1903년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창립한 모터 싸이클 회사로 전 세계의 대형 고급 모터싸이클의 대명사이자 미국의 강력한 파워를 상징하는 회사로 자리 매김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3년 미국의 윌리엄 실베스터 할리(William Sylvester Harley)와 아서 데이비슨(Arthur Davidson)이 공동 창업하여 각각의 이름을 따 할리 데이비슨 이라고 지었으며, 이 회사도 마찬가지로 모든 모터싸이클 회사가 다 그랬듯이, 허름한 창고에서 엔진 자전거... 자토바이? 제품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11] 나름 상품이 팔리고 공장도 확장하면서 1909년에 지금의 할리 데이비슨의 상징이기도 한 45도 협각의 V 트윈 엔진을 만들었다.[12] 할리는 지금에 와서는 아저씨들이나 타는 느긋한 바이크로 인식되기 십상이지만, 모든 모터사이클 회사가 그래왔듯이 할리 역시 레이스를 통해 성장을 해왔던 회사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더트 트랙 레이스[13]의 절대 강자였으며 각종 레이스에서 많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었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시 세계 최고의 성능을 발휘했던 이탈리아나 영국의 모터사이클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 레이스에 사용되었던 바이크들이 지금은 스포스터 시리즈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할리 역시 매우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1960년대 들어 가격이 싸고 엄청난 성능을 자랑했던 일본제 바이크의 공습 덕분에 주가가 곤두박질쳐서 레저 용품 회사인 AMF에 매각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지금도 그 시절의 잔재로 골프카트와 스노우모빌을 만들고 있다.
AMF 산하에서 기존에 만들던 대배기량 바이크를 포기하고 소배기량 모델 개발에 주력하면서 스쿠터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기존의 고객마저도 외면을 하게 되어 정말 사라질 뻔 하기도 했으나, 경영진들이 엄청나게 노력한 덕분에 다시 경영권을 되찾고 할리 데이비슨만의 독특만 문화를 전파할 HOG[14]를 설립하고 그에 걸맞는 각종 뛰어난 모터사이클을 개발한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개발된 소프테일 시리즈의 공헌이 컸다. 특히 팻보이의 경우엔 엄청나게 팔려나가서 할리의 부활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또한 이후 뷰엘의 등장으로 "할리 엔진을 장착한 미국의 슈퍼바이크"를 만들었던 전력도 있어서 스포스터 엔진을 기반으로 흡배기 부분에서 크게 성능을 향상한 XB를 기반으로 하여 스포츠 바이크 시장에도 진출하게 되었다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부분은 뼈아픈 실패 경험을 축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2000년대 중반, 유로 기준의 배기가스 제한이 세계적으로 채용되면서, 대부분이 공랭식 바이크는 재앙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고, 따라서 공랭 스포츠 바이크계는 BMW와 모토구치 등 극히 일부의 기준 통과치를 기대할 수 있는 메이커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멸하게 된다. 게다가 이 시기는 할리 데이비슨이 막 수랭 레볼루션 엔진을 채용하던 시점이었지만, 이 채용 혜택이 뷰엘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15] 대신 2000년대 말, 뷰엘사는 로택스사의 엔진을 장착한 수랭 스포츠 바이크를 출시하는데, 이미 이 시점에서 비슷한 계열 바이크를 생산하던 유럽 회사들인 KTM, 두카티, 아프릴리아 사의 제품군과 비교하기엔 떨어지는 성능이었고, 때문에 마케팅엔 실패하고 그냥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회사 정도로 남게 된다. 때문에 2000년대 말엽 마지막으로 나온 수랭식 모델을 끝으로 뷰엘사는 할리 데이비슨의 역사 뒤켠으로 사라지는데, 이후 창립자인 에릭 뷰엘이 독립하여 세운 EBR 모터사이클에서 뷰엘이 디자인한 프레임을 기반으로 한 스포츠 바이크를 제작하여 판매 중이고, 소량 하이엔드 컨셉으로 사실상 두카티나 KTM와 비교할만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16]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공랭식 에볼루션 엔진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따라서 할리와의 연계는 이제 없어진 셈이 되어 버렸다.
뷰엘의 이탈 이후, 할리는 그 공백을 메꾸고자 XB 시리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하여 XR1200을 발매하게 되지만, 이 역시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했을 뿐 그리 많은 판매고를 거두지는 못하게 되었고, 2011년을 마지막으로 미국 시장에서는 단종되어 아시아와 유럽 시장에만 소량제작의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17][18] 허나 이때부터인지 바뀐 소비자의 기호를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전략들이 실행 되었으며, 현재는 수랭식 미들급 바이크인 스트리트 시리즈와 전기 바이크 컨셉의 시승회 등을 기점으로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로 서서히 전환중인 상황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