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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재규어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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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은 어떤 외교전략을 펼쳤나요?

안녕하세요? 선조에 이어 왕이된 광해군은 불에탄 궁궐을 새로 고치고, 버려진 땅을 일구며 호구조사를 실시하는등 다양한 일을 했는데 그중 외교가 뛰어났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광해군은 어떤 외교전략을 펼쳤나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광해군은 누르하치가 1616년 여진족을 통일하고 수립한 후금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명을 배신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금은 명과 대립 중에서 있었기 때문에 명과 후금 사이에 중립 외교를 통해 실리 정책을 펴나갔습니다.

    명나라는 후금과 대립하면서 조선에 지원병을 보내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이에 조선은 명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1619년 1만 3천 명나라의 원병을 보냈으나,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정세를 파악하여 상황에 맞춰 행동하라 지시하였습니다. 도원수 강홍립(姜紅立)은 후금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후금과 휴전을 맺었고, 그 후 명나라는 모문룡(毛文龍) 부대를 압록강 입구의 가도(假島)에 주둔케 하였으나, 조선 측은 그들의 식량을 지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후금과 친선을 도모하여 중립적인 정책을 취했습니다. 다시 말해 명나라와 후금의 싸움에 말려들지 않으면서 내치와 국방에 주력하는 실리정책을 펴나갔습니다.

  • ✅️ 광해군은 '중립외교정책' 즉, 명과 후금 사이에서 조선의 실리를 얻고자 하는 외교전략을 펼쳤는데 이게 서인들에게 소위 '명나라를 섬기지 않는다.' 라는 명분을 주게 되어 인조반정으로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