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미술화가였던 조희룡에 대하여 질문..
우리나라 그림 화가 중에 조희룡이라는 화가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조희룡의 호 그리고 화가가 살았던 시대적배경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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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윤지혜 전문가입니다.
조희룡(趙熙龍)은 조선 후기의 시서화(詩書畵) 삼절로 꼽히며, 추사 김정희 등이 도입한 중국 남종 문인화로부터 이념미를 배제하고 조선적 감각을 가미한 <조선문인화(朝鮮文人畵)>의 세계를 열어낸 인물입니다.
1789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1866년 사망하였으며, 호는 우봉(又峰)입니다. 1847년 벽오시사(碧梧詩社)를 결성하여 후배 화가들을 이끌며 문인 화단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습니다.
조정의 전례 문제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1851년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에 유배되어 1853년까지 유배 생활을 보냈습니다. 유배지 오두막집에 '만 마리 갈매기가 우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만구음관(萬鷗吟館)'이라는 편액을 붙이고 그 속에 칩거하면서 집필과 작품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시와 서예, 그림에 모두 능했으며, 특히 서예에서는 추사체를 잘 썼으며, 그림에서는 난초와 매화를 잘 그렸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호산외사(壺山外史)>, <해외난묵(海外蘭墨)>,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이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홍매대련(紅梅對聯)>,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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