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로고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rogermaan
rogermaan23.05.18

청불 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한 원인은 무엇인가요

청나라와 프랑스가 전쟁을 하여 프랑스가 승리 하였는데요 청나라는 자기 앞마당에서 전쟁을 한 것인데 어찌하여 프랑스에게 패배를 한 것인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1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8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2월, 프랑스 의회는 군비 추가와 함께 15,000명의 증원군 파병을 승인했다. 원정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아메데 쿠르베 제독은 압도적인 무기와 병력의 우위를 앞세워 손타이, 바쿠닌, 타이구엔, 훈호아 등 여러 도시를 함락하고, 손코이 강 삼각주를 제압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베트남 쪽에서도 별 수 없이 청나라에 손을 내밀었고, 청나라는 이 제안을 받고 군대를 파견했다.[1] 그러나 이 무렵 청나라는 신강에서의 전쟁이 막 끝나기도 했고, 이홍장은 베트남에 힘을 쏟을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는 되도록 빨리 전쟁을 종결시키기를 원했기에 1884년 4월, 프랑스 대표 푸르니에와 함께 천진에서 만나, 이른바 간명(簡明) 조약을 체결했다. 청은 프랑스의 베트남 보호권을 승인하고 베트남에 주둔하고 있던 청군을 변경으로 철수시키기로 하는 대신, 프랑스는 중국의 변경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프랑스는 간명 조약에 조인하고 난 뒤, 바로 청군을 공격했다. 청군이 국경선까지 철수한다는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 명분이었는데, 간명 조약에는 맹점이 있었다. 조약에서는 분명히 청군의 철수를 약속했지만 언제까지 철수할 것이라는 내용이 없었다. 만일 조약 내용에 청군이 특정 시한 내에 철수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면 그 전까지는 프랑스가 공격할 명분이 없었다. 그러나 간명 조약에는 철수 기한이 명시되어있지 않았으니 프랑스가 지금 청군을 공격해놓고 '왜 먼저 청군이 물러나지 않았느냐.'라고 논리를 펼 수 있는 셈이었다. 이에 베이징 주재 프랑스 공사는 전쟁 비용 2억 5,000만 프랑의 배상과 청군의 즉시 철수를 요구했다. 청나라 조정에서는 '1개월 이내에 다 철수시킬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프랑스는 이미 푸저우(福州)의 마미 군항(馬尾 軍港)을 공격했다. 이것이 마미 해전이다. 당시 선정대신을 맡으며 복주에 체류 중이던 하여장(何如璋)은, 나름대로 사태를 더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 발포 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덕분에 프랑스 함대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복건함대를 전멸시켰다. 무엇보다 마미 조선소는 무려 은 2,000만냥을 들여 만든 양무파의 기대 그 자체였지만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출처: 나무위키 청프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