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어떻게 보면 부정입학에 관한 의혹 때문에 유배가 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허균은 1609년(광해군 1)에 명나라 책봉사가 왔을 때에 이상의(李尙毅)의 종사관이 됐다. 이 해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고 이어 형조참의가 됐다. 1610년(광해군 2)에 전시(殿試)의 시험을 주관하면서 조카와 사위를 합격시켰다는 탄핵을 받아 전라도 함열(咸悅)로 유배됐다. 그 뒤에 몇 년간은 태인(泰仁)에 은거했다.
허균은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에 평소 친교가 있던 서류출신의 서양갑(徐羊甲) · 심우영(沈友英)이 처형당하자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이이첨(李爾瞻)에게 아부해 대북(大北)에 참여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허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