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은 중립외교와 폐모살제를 이유로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습니다. 명과 후금 사이에에서 실리 외교를 추구했는데, 서인들의 입장에서 임진왜란을 도운 명에 대한 배신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계모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하고, 이복 동생 영창대군을 죽인 죄입니다.
광해군은 19년간 강화도, 제주도 유배를 견디며 노환을 사망했습니다. 당시 64세로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고령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살설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망 당시 병증에 대한 자세한 보고가 없었고, 사후 조치가 비정상적으로 조용히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인조 반종 세력이 광해군의 복위를 막기 위한 제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