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이 북인과 남인으로 분열된 계기는 1589년 정여립 모반 사건(기축옥사)을 계기로 합니다. 기축옥사 조사에 나선 정철이 동인의 유력 인사를 가혹하게 처벌했는데, 주로 남명 조식과 화담 서경덕 문인의 피해가 피해가 컸습니다. 반면 이황 문인들이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고, 서인의 공세를 막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조식과 서경덕 학파가 북인, 이황 학파가 남인으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 분화는 1591년 건저의 사건입니다. 정철이 세자 책봉을 건의했다가 선조의 노여움을 받아 파직을 당하는데, 집권한 동인 가운데, 기축옥사로 피해가 컸던 북인은 강경한 처벌, 반면 피해가 적었던 남인은 온건한 처벌을 주장하면서 분열이 기정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