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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안경곰147
빼어난안경곰14723.04.06

러일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하게 된걸 러일전쟁이라고 부르잖아요. 러일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무엇때문인가요? 한국과 관련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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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러일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재정 러시아는 최초에 조선에 큰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 당시 러시아는 동북아지역 패권국이었습니다.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은 이제 청나라의 세력을 조선에서 몰아냈으니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조선을 자신들의 지배 아래에 두고 병합하려고 계획 하였지요.

    그런데 청일전쟁 결과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의 결과로 일본이 얻은

    요동반도를 다시 반환하라고 러시아, 독일, 프랑스가 압력을 넣습니다. 이른바 삼국간섭이었습니다.

    이를 조선의 위정자들도 바라보았지요. 고종과 명성황후는 러시아와 가까워져서 일본을 견제하고

    그사이 조선의 근대화를 이루려고 하였습니다. 특히 명성황후가 러시아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였지요.

    이 부분은 잘못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제까지 청나라의 힘을 빌려서 조선의 이권을 다 내어주며

    나라를 지켰는데 또다시 외세의 힘을 빌리려고 하는 모습은 결국 결과가 좋지 못하고 그것을 역사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거든요. 특히 국제관계에서는 더욱이 더 그렇습니다. 이런 움직임에 일본정부는

    이제 조선을 병합하려고 한 계획이 다 완성되고 막대한 돈을 들여 청나라와의 전쟁에서도 이겼는데

    조선이 러시아를 끌어 들이려고 하니 명성황후가 눈에 가시였습니다. 결국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를 살해하게 되고

    일본정부는 이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흥선대원군이 한 일이다. 조선의 황실 암투로 몰아가지요. 이에 고종은 분노합니다.

    민영환(민겸호의 아들)을 보내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서 조선의 궁궐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군대와 무기를 받아오고

    일본이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정말 힘든 외교전이었고 일본 외교관도 이를 어떻게 든

    막으려 했지만 민영환은 니콜라이 2세를 설득했고 러시아가 움직이게 만듭니다.(물론 러시아도 부동항 등 조선의 이권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지만 일본과 갈등을 겪으면서 조선문제에 개입해야 하는지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결국 조선은 잠시지만 일본이 러시아를 넘어서기 전까지 근대화를 위한 시간을 벌게 되고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지금부터 근대화를 완성하는지 아니면 열강들의 속국이 되는 지의 골든타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이에 아직 러시아를 상대 할 수 없었던 일본제국은 한발 물러나지만 엄청난 국방비 증액으로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합니다.

    그 이후 일본은 러시아와 많은 협상을 합니다. 만주에 대한 우월권을 인정 할테니 조선이 일본의 보호령이 되는 것을 인정하라

    하지만 러시아는 북위 39도선을 기준으로 그 위쪽은 중립지역으로 선포하고 한반도에서 일본의 군사적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

    라고 주장했고 이에 일본군은 여순(지금의 다롄, 청일전쟁 후 러시아가 조차(빌려서 씀)하여 항구를 건설함)에 대한 기습

    (1904년 2월 8일 밤)으로 러일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일전쟁이 끝나고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요동반도 영유를 확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러시아 입장에서는 일본이 요동반도를 차지하는 것이 불편했고 삼국간섭을 주도해 이를 좌절시켰으며 러시아는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청나라와 비밀동맹을 체결함으로 동청철도부설권을 획득합니다.

    또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만주를 세력권화하기 위해 노력을 들이고 있던 상태고, 조선에서도 아관파천을 성공시켜 친러정권을 수립시켰지만 러시아는 조선에 대한 간섭을 키우지 않는데 시베리아 철도가 완성될때까지 일본과 대립보다는 타협을 우선시 하는 정책을 펼치던 상황이었습니다.

    러시아가 동아시아정책을 밀고나가게 된 것은 니콜라이 2세의 신임을 얻었던 베조브라조프를 비롯한 강격파가 실권을 장악하면서 비롯되는데 이들은 만주, 압록강 유역으로 군대를 이동시켜 압록강산림채벌권 실행을 명목으로 군사기지화 시키고 조선에 대한 야욕을 드러냅니다.

    베조브라조프 일파의 모험주의노선이 러일전쟁을 촉발시켰는데 이는 일본의 북진정책 러시아 남하정책 그 책임을 돌리는 견해가 러일전쟁 원인이 됩니다.

    양국은 개전에 이르기까지 여러차례 만주와 조선에 대한 교섭을 가지면서 합의점을 찾았지만 러시아는 자국의 만주독점권 중립지대설정 한국령의 전략적 사용불가 입장을 고수했고, 일본은 청조 양국의 독립보전과 상업상의 기회 균등, 조선과 만주에 있어서 러일의 상호 이익 보장 등 골자로 하여 서로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양자의 타협 여지가 없어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 러일전쟁의 원인은 간단히 말하면 조선을 둘러싼 두 열강의 충돌이다. 19세기 후반 국제세계의 일반적 분위기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특히, 중국과 조선은 열강들의 세력 각축전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