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2월 고종은 황급하게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습니다. 고종이 아관파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우선 1895년 8월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었으며, 그 다음은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신변 위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러시아 공사관은 일본 군대가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는 안전한 피신처로 본 것도 있습니다. 특히 베베르 공사는 고종 측근들에게 피난 구상에 적극 호응하여 본국 승인가지 받아 고종과 세의 보호를 약속했습니다. 또한 고종은 일본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이려는 정치적 계산도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