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미디어
뽀얀굴뚝새243
전국노래자랑은 그야말로 국민프로그램인 거 같아요. 장수하는 비결이 뭘까요?
송해 선생님이 너무 사회를 재미있게 잘 보셔서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도
정말 재미있게 보셨던 프로그램이 유일하게 전국노래자랑이었던 거 같아요.
국민들의 입장에서 사회를 봐주시고 재미와 감동을 이끌어주시는 분은
단연코 고 송해선생님이 최고이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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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은 예로부터 풍류를 아는 민족입니다. 풍류라는 말은 ≪삼국사기≫ 진흥왕조에 화랑제도의 설치에 관한 기사 가운데 나온다. 그 기사는 최치원(崔致遠)이 쓴 난랑비서문(鸞郎碑序文)을 인용한 것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이 교(敎)를 베푼 근원에 대하여는 ≪선사 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삼교(三敎)를 내포한 것으로 모든 생명과 접촉하면 이들을 감화시킨다(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즉, 신라 당시에 있었던 현묘지도(玄妙之道)가 곧 풍류인데 그것은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재래의 고유신앙을 대륙으로부터 들어온 삼교사상(三敎思想)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유교의 본질은 아욕(我慾)에 찬 자기를 버리고 인간본성인 예로 돌아가는 데 있고[克己復禮], 불교의 본질은 아집(我執)을 버리고 인간의 본성인 한마음[一心], 곧 불심(佛心)으로 돌아가는 데 있으며[歸一心源], 도교의 본질은 인간의 거짓된 언행심사(言行心事)를 떠나 자연의 대법도를 따라 사는 데 있다[無爲自然].
이렇듯 삼교의 본질은 다같이 아욕에 사로잡힌 자기를 없애고 우주의 대법도인 천부의 본성, 곧 참마음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우주적인 참마음이란 하느님이 주신 마음이요 하느님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풍류도는 삼교의 본질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하겠다.
실제 상고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봄·가을에 하느님에게 제사를 드리되 노래와 춤으로써 하였다. 여기에서 그들은 하느님과 하나로 융합하는 강신체험을 가졌고, 이것을 사상화한 것이 풍류도이다.
풍류도란 하느님을 섬기는 천신도(天神道)요, 그 핵심은 하느님과 인간이 하나로 융합되는 데 있다. 내가 없어지고 내 안에 신이 내재한 상태의 ‘나’가 풍류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天人合一].
신과 하나가 된 풍류객은 새로운 존재양식을 가진다. 자기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관계의 세계로 옮겨간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본연의 인간으로 되돌아가도록 교화한다. 이것은 실로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는 널리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분으로 믿어왔다[弘益人間].
요컨대 풍류도의 본질은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많은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게 하는 데 있다. 이러한 풍류도를 몸에 지닌 사람을 가리켜 화랑(花郎)이라 한다. 그러므로 화랑집단의 교육을 위한 교과목에도 세 가지가 있었다.
곧 도의로써 서로 몸을 닦고[相磨道義], 노래와 춤으로써 서로 즐기며[相悅歌樂], 명산대천을 찾아 노니는 것[遊娛山水]이 그것이다. 도의로써 몸을 닦는 것은 군생(群生)을 교화하기 위한 것이요, 가악(歌樂)으로써 서로 즐기는 것은 풍류를 터득하는 길이요, 명산대천을 찾아 대자연 속에 노니는 것은 그곳에 임재한 신령과의 교제를 가지기 위함이었다.
여기에서 우리의 고대종교사상이 지녔던 원시적 이념이 삼교를 매개로 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종교적 사상으로 승화되어간 것을 볼 수 있다. 곧 생존적 가치에 불과하였던 풍요와 평안이 도의에 입각한 인격적 가치의 세계로 승화되었고, 신령과의 교제술이었던 음주가무가 이제는 인생과 예술과 자연의 융합에서 이루어지는 풍류로 발전된 것이다.
고려시대 때 보면 팔관회(八關會)와 관련 있는 글에 풍류라는 말이 나온다. 곽동순(郭東珣)의 <팔관회선랑하표 八關會仙郎賀表>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복희씨가 천하의 왕이 된 뒤로부터 최고는 우리 태조의 삼한(三韓)이요, 저 막고야(藐姑射) 산에 있다는 신인(神人)은 우리 월성(月城:반월성, 즉 신라 서울)의 사자(四子:신라의 대표적인 네 화랑)인가 하나이다. 풍류가 역대에 전해왔고 제작(制作)이 본조에 와서 경신되었사오니 조상들이 즐겼고 상·하가 회복되었나이다.”
여기에서 보면 풍류는 최치원이 설파하였던 현묘지도와 같은 뜻인 듯 싶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행사가 팔관회인 것 같다. 그러기에 화랑들을 찬양하고 그들을 신인으로 떠받들고 있다. 또 이 글에는 음악과 관련되는 부분도 많이 있다.
고려 태조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나라를 세운 데 대하여 “천지가 내리신 아름다운 선물에 보답하고자 군신이 서로 기뻐하는 음악을 만드실제 용주(龍柱)에 영문(靈文)을 얻어 팔정(八正)을 얻고 팔사(八邪)를 막았으며, 계림(鷄林)의 선적(仙籍)을 상고하니……”라 하여 풍류음악은 인군과 신하가 함께 기뼈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여덟 가지 사악한 것을 막고 바른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또 “국가를 위하여 태평을 이룩하시매 종고(鐘鼓)를 가져 스스로 즐기셔도 술에 취하고 음악을 즐김이 아니어서 백성들과 함께 즐기시려고 철을 가려 의식을 거행한다.”라는 구절도 있고, “음양을 조화하는 음악을 연주하여 신선궁에서 놀아보니……”라는 대목도 있다.
즉, 국가가 태평하도록 정치를 잘 하니까 임금이 백성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이 좋고, 또 그런 음악은 음양이 조화되는 음악이어야 신선이 되게 하는 듯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고려 때에는 풍류가 팔관회와 같은 국가적인 의례나 풍속을 통하여 나타나고 음악을 통한 척사위정(斥邪衛正)이나 신인합일(神人合一)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