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은 10만 거란군의 침략 당시 평야에서 정면 승부를 하지 않고, 청야 전술로 보급로를 차단해 거란군을 굶주리고 치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거란군은 개경 공격에 실패하고 퇴각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 때를 노린 것입니다.
강감찬은 거란군의 귀환 경로인 삼교천 계곡에 기병 1만 2천을 매복시키고, 거란군이 도하하는 순간 공격하여 대열을 붕괴시켰습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물을 떠트려 수공을 펼쳤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귀주는 4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통과 도로가 좁고 함해 적을 막기 좋은 길목이었습니다. 개경에서 추격해 온 김종현의 기병대가 거란 후진을 습격하고, 연주에서 승리한 강민첨의 기병 1만 4천이 정주 방향에서 합류해 거란군을 완전 포위한 뒤 일제히 돌격해 섬멸한 것입니다.
즉 강감찬의 승리는 지형과 타이밍, 청야 전술과 기습, 수공과 포위 섬멸까지 단계별로 연결된 작전이 유기적으로 작동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