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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친칠라280
대단한친칠라28023.04.02

소현세자의 독살이 사실인가요?

인조의 큰아들인 소현세자는 서양문물과 국제정세에 밝은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들에게 독살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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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0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소현세자의 독살설은 인조와 소현세자의 이념적 갈등이 매우 심각했고, 왕위 계승의 경쟁자라는 점 때문에 상당한 근거가 있어 보이긴합니다만 독살은 아니라고합니다.

    최근 소현세자의 심양 생활을 기록한 『심양일기』에 소현세자가 병을 앓은 내용이 나타나고, 심양에서 조선으로 귀국하는 동안의 건강 문제 등이 겹쳐 병으로 죽었을 가능성도 높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심양일기』에 의하면 소현세자는 1638년부터 질병이 잦아져 감기, 소화불량, 안질, 마비증세, 불안 습종(濕腫) 등의 질환으로 고생했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소현 세자의 죽음은 미스터리한 사건 중에 하나입니다.

    실록에서는 물론, 소현 세자가 학질에 걸려 숨을 거두었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청나라에 갔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소현세자가 왜 갑자기 급사한 것이냐 입니다.

    그래서 소현 세자의 독살설이 제기됩니다.

    인조가 소현 세자가 자신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를까봐 끊임없이 소현 세자를 감시한 것으로 보아, 소현 세자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의심한 것인데, 이로 보아 충분이 인조가 소현 세자를 독살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죠.

    또한 소현 세자의 빈 민회빈 강씨가 갑자기 1년 후 역모에 연루되어 사사되고, 갑자기 인조가 소현 세자의 장자 세손을 폐위시키고, 소현 세자의 세 아들을 유배시키는 점이 독살 가능성을 더 높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은 소현 세자만이 알 뿐, 어느 누구도 그 진실을 알 순 없습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네, 사실상 당시 어의였던 이형익을 통해 인조가 세자를 독살한 것으로 봅니다. 기록에 세자가 독살당했다는 증거도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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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소현세자는 인조의 큰아들로, 서양 문화와 국제정세에 대해 알고 있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훌륭한 지식을 갖고 있어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독살당했다는 주장은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소현세자의 죽음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갑론을박이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그가 결핵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기록된 내용은 없습니다. 인조에 의해서 독살 되었다는

    추측만이 있을 뿐 공식적으로는 병으로 인하여 사망했습니다.

    인조는 소현세자가 서학을 배우고 자신에게 삼전도 굴욕을 주었던

    청나라와 가깝게 지내는 것이 못마땅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청의 2인자

    섭정왕 도르곤은 조선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여차하면 인조를 폐위

    시키고 소현세자를 왕위에 세울 뜻도 내비칩니다. 부자사이의 갈등이 극대화

    될 수 밖에 없없습니다. 하지만 독설에 대해서는 추측만 가능 할 뿐 우리가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실록에 기록에 보면 독살일 가능성이 높은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

    지금까지도 독살설이 유력한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645년 4월 23일에 발병을 하여서 26일에 급사 할만큼의 병이 악화가 됐다는것은

    독살설을 뒷받침하는 증거일수 밖에 없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현세자(1864-1897)는 조선시대 말기에 존재한 인조의 아들이며, 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 중 일부는 독살설과 관련된 내용이 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은 일본의 염탐과 관련된 것입니다. 당시 일본은 조선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유린정책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소현세자는 조선의 독립과 국익을 위해 일본의 간섭에 대항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일본은 소현세자를 목표로 하는 암살 계획을 세우고, 1895년 10월 8일 밤, 그의 안산에서의 거처에서 일본인 작전병들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다른 설도 존재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소현세자가 당시 조선의 유신들과 대립하다가 그들에게 암살당했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소현세자가 조선의 정치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살해당했다고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들은 증거나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논란이 있는 문제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조가 청의 군대에 무릎을 꿇은 '삼전도의 치욕' 이후


    인조의 아들인 장남 소현세자와 차남 봉림대군 내외, 그리고 신하들과 백성들이 청으로 볼모의 신분으로 끌려갑니다.


    소현세자는 그 곳에서 청과 조선의 관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 청의 관료들과 접촉하고 댓가로 그들의 경제적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버지 인조의 의심을 샀습니다.


    몇 년 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조선으로 돌아오는데


    소현세자는 아버지 인조에게, 청에서 서양과 청의 선진 문물에 대해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점을 보고합니다.


    가뜩이나 소현세자에 대한 반감이 컸던 인조는 아들을 동궁에 유폐시키고


    독살을 시킨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