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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이 427년에 천도한 이유가 뭘까요?
장수왕이 고구려의 수도를 427년에 평양성으로 바꾸었는데요. 평양성에 수도를 정하게 된 배경과 이후 영향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5개의 답변이 있어요!
427년 평양으로 천도한 가장 큰 이유는 대동강을 끼고 있는 유리한 지형 때문 입니다. 삼국 시대에 한강을 점령 하기 위해서 삼국이 경쟁을 벌였듯이 대동강을 통해 황해로 직접 접근할 수 있는 평양은 국제적인 활동에 유리한 위치였고 중국 남조와 북조와의 교류가 왕성했고 백제와 신라 방면으로의 진출에도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기에 평양은 지리적으로 좋은 조건 이였습니다. 또한 정치적으로 귀족 세력이 강한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긴 후에는 새로운 지역을 기반으로 왕권이 강력해 지기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빛나라 하리 입니다.
장수왕이 평양성에 수도를 정하게 된 배경은
본래 고구려 수도 제도는 평시에 수도 노릇을 하는 평시성과 전시에 방어를 담당하는 산성으로 구성된 이중체제 였습니다,
평양 일대는 고조선의 영토 였으며 고조선이 기원전 108년에 멸망하고 난 이후, 낙랑군의 치소가 있었던 곳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남한 학계의 유력한 학설 입니다.
이후 고구려는 평양성을 당시 수도인 국내성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겼는데요.
고구려의 수도는 초기에 졸번성에서 국내성으로 옮긴 이후 계속 국내성 이었지만 국내성은 첩첩산중 좁은 땅에
있었고 교통이 지리적으로 결절점 이라고 보기 어려워서 영토가 넓어진 고구려에 적합한 수도는 아니였습니다.
결국 19대 광개토대왕이 평양을 다지고 제 20대 장수왕대에 국내성과 환도성에서 안학국으로 대성산성으로
천도 하였던 것입니다.
평양 지역은 과거 고조선의 도읍이었던 왕검성이 있던 곳이고 고조선 멸망 후 한사군 중 하나인 낙랑군이 설치되어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곳이었습니다. 이전부터 뛰어난 경제력을 지니고 문학적으로 발달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요충지 였습니다. 당시 고구려 국내성 지역은 지형적으로 협소한 곳이었이 때문에 이미 동북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강국으로 성장한 고구려의 도읍으로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이후 미천왕 대에 영토를 확장하면서 고구려는 평양지역을 확보하게 되었고장수왕 15년에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 것입니다.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기고 난 뒤 고조선의 영토를 어느 정도 수복하고 남하정책을 계획하는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고구려는 북방 민족과의 전쟁을 지속했지만, 장수왕은백제와 신라를 견제하며 남쪽으로 영향력을 확대 하려 했어요 평양은 대동강을 끼고 있어 해상 교통이 발달했고 농업 생산량도 풍부해 경제적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기존 귀족 세력의 기반이었던 국내성을 벗어나왕권을 강화 하고 새로운 정치환경을 조성하려는 목적도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