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출산율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며칠 전에 뉴스에 지금 최저 출산율을 기록했으며,
이 수치가 먼 훗날에 큰 사회적 문제로 다가온다는 뉴스를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조선시대의 출산율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출산율의 출산율(양반 여성 기준)으로 평균 5.09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출산율이 높은 이유는 당시에는 유아 사망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사례를 보면 정약용의 아내(풍산 홍씨) 평생토록 아들 6명, 딸 3명을 합쳐 9명을 출산했으나 성년까지 생존한 자녀는 2남 1녀로 총 3명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는 양반 여성 1명이 평균 5.09명을 출산 , 이 중 제사를 지낼수 있는 남자아이는 1.25명 수준이었습니다.
유아 사망률이 높아 아들이 더 있어도 아들을 더 원했으므로 출산율이 높아졌고, 종법 질서가 강화된 18세기 아들로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의무가 여성에게 지어지면서 독특한 문화적 행위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출산율은 17세기를 기점으로 하락, 이는 여성의 재가 금지가 대표적으로 성을 금기시하는 풍속은 집의 구조에도 영향을 주어 부인이 지내는 안채, 남편이 주로 거처하는 사랑채로 구분, 이때문에 임신을 위해 씨 내리는 날 을 정해 부인과 남편이 만나는 것이 조선 사회의 암묵적인 관행이었고, 양반 여인들의 재혼금지는 평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출산율 급감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조선시대 인구사를 연구한 연구 결과를 보면
조선시대는 양반 여성 1명이 평균 5.09명을 출산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인구사를 연구하는 박희진 박사님의 소논문에 의하면 양반 여자 1명이 5.09명을 출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는 어린 아이들의 사망률이 높았기 떄문에, 나중에 제사를 지낼 수 있었던 남자 아이는 1.25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문도 이어야 하고 성인까지 자랄 남자아이가 필요했기 때문에 좀 많이 낳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