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그림형제는 원래 법률가 였나요?
독일의 그림형제는 그림동화를 지은 동화작가로 유명한데요.
그런데 원래는 법학을 공부하고 법률가의 길을 걸었다고 들었어요.
어떤 이유로 동화작가가 되었는 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림형제는 1805년까지 법학자 프리드리히 카를 폰 사비니 교수의 지도 아래 공부했으며, 대학 공부를 마친 후 카셀 전쟁서기국 견습생, 베스트팔렌 제롬 왕의 개인 도서관원, 추밀원 배석판사로 일했으며 1806년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가 침입하자 형제는 조국의 해방과 통일, 주권 확립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들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독일 민족을 정치적으로 통일 시키는 방법의 일환으로 고대 독일의 구전 전통으로부터 민간설화를 수집했습니다.
민담과 동화, 문헌학 속에 나타난 이상적인 고대 독일의 모습을 환기시킴으로써 과거 통일 국가였던 독일이 이데롤로기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다시 합일하기를 희망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림 형제(야콥 그림 (Jakob Grimm, 1785~1863), 빌헬름 그림 (Wilhelm Grimm, 1786~1859))는 독일의 언어학자, 문헌학자. 야콥 그림은 1785년, 빌헬름 그림은 1786년에 독일 헤센 공국 하나우에서 판사 필립 빌헬름 그림과 도로테아 그림의 장남과 차남으로 태어났다. 5남 1녀 중 가장 각별하게 지냈던 형제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가족을 따라 카셀로 이주했고, 함께 가톨릭 신학교에 다녔다. 졸업 후 마르브루크 대학으로 건너가 1805년까지 법학자 프리드리히 카를 폰 사비니 교수의 지도 아래 공부했다. 사비니 교수는 형제에게 학문의 고귀함에 대해 가르쳐준 첫 번째 스승이었고, 독일 후기 낭만주의의 대표 작가인 브렌타노와 아르님을 소개한 장본인이었다.
대학 공부를 마친 후에는 카셀 전쟁서기국 견습생, 베스트팔렌 제롬 왕의 개인 도서관원, 추밀원 배석판사로 일했다. 1806년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가 침입하자, 형제는 조국의 해방과 통일, 주권 확립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독일 민족을 정치적으로 통일시키는 방법의 일환으로, 고대 독일의 구전 전통으로부터 민간 설화를 수집해 나갔다. 민담과 동화, 문헌학 속에 나타난 이상적인 고대 독일의 모습을 환기시킴으로써 과거 통일 국가였던 독일이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다시 합일하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형제는 약 십삼 년 동안 수집한 끝에 1812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 1권을 완성했으며 1814년에 2권을 발표하고 1822년에는 『주해서』를 출간했다.
1830년에 괴팅겐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지만 1837년 하노버 왕의 헌법 위반 및 폐지를 규탄하면서 공국 밖으로 추방당했다. 그러나 1841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새로운 왕이 되면서 베를린 왕립 학술원의 회원으로 초빙되어 명예를 회복했다. 형제는 『동화』 외에도 『독일 전설』, 『독일어 문법』, 『독일 법의 고대 유산』, 『독일 신화』, 『독일어 역사』 등의 기념비적인 저서를 발표했다. 특히 1854년에 제1권이 출간된 『독일어 사전』은 여러 학자가 계승하여 1961년까지 계속 편찬되었다. 형제의 전문 분야였던 언어학의 영역에서는 형 야콥이 더 큰 업적을 남겼지만, 그림 형제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높인 『동화』를 만드는 데는 동생 빌헬름이 더 큰 역할을 했다.
수집한 옛이야기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다듬은 사람은 주로 동생이었다. 평생 서로에게 헌신하면서 각자 그리고 함께 끊임없이 학문에 정진한 형제는 빌헬름 그림이 1859년, 야콥 그림이 1863년 세상을 떠났다.[네이버 지식백과] 그림 형제 [Jakob Grimm, Wilhelm Grimm] (해외저자사전, 201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