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 때 제정된 공법은 전분 6등, 연분9등으로 나누어 총 54등급의 과세 단위를 설정해 그 판정과 운영이 복잡하고 전체적으로 세율이 높아 현실적으로 시행되기 어려워 15세기 말부터 전세는 풍흉과 관계없이 최저 세율에 따라 쌀 4~6두를 고정적으로 징수하는 것이 관례화되었고 영정법은 이러한 관례를 법제화하고 세수를 늘리기 위해 그 해의 풍흉에 관계없이 농지의 비옥도에 따라 9등급의 새로운 수세액을 정한 것으로 상상전 20두, 상중전 18두, 상하전 16두, 중상전 14두, 중중전 12두, 중하전 10두, 하상전 8두, 하중전 6두, 하하전 4두였습니다.
농지에는 전세 외에도 1결당 대동미 12두, 삼수미 2두, 4결작 2두의 정규 부세와 여러가지 명목의 수수료, 운송비, 자연소모비 등의 잡부금이 부가되어 과중한 부담이었고 이러한 부담은 소작동민에게 전가되어 임진왜란 후 국가의 전세 수취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각 도의 농지 총 결수에 재해 면적을 계산해 삭감하고 수세의 총액을 할당 징수하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그것이 1760년 시행된 비총법 입니다.
영정법으로 인한 재정 수입의 감소를 보충하기 위해 양전 사업을 강화했는데 양척동일법으로 토지를 측량하는 자를 통일하여 이것을 기준으로 수확량을 계산했습니다.
결과는 전세율이 낮아졌지만 농민의 대다수가 자신의 토지가 없는 소작농이므로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부담이 늘었으며 국가에서 부족한 전세를 보충하기 위해 수수료, 운송비, 자연소모 충당비 등의 명목으로 여러 잡세를 징수해 오히려 농민의 부담이 더 증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