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공민왕때 이성계의 1차 요동정벌은 왜 실패했나요?
공민왕때 1차 요동 정벌을 단행하여 요동성까지 함락시킨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시기에 이성계의 판타지 같은 활솜씨로 활약하여 오녀산성을 점령하는데 큰공도 세웠죠.
하여튼 요동성을 함락까지 시켰는데 왜 실패했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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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재위시 반원 정책의 일환으로 1357년 1차 요동 정벌(파사부 정벌)을 단행합니다. 파사부는 압록강 유역과 요동의 길목으로 고구려 시절에는 서안평이라 하였습니다. 이곳을 차지하여 요동 정벌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이후 1368년 명나라 세워지면서 겉으로는 명에 머리를 숙이지만 요동 정벌을 계속 추진하여 1370년 1월 오녀 산성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 기철의 아들(기사인테무르)의 반란을 핑계로 요동 정벌을 재개하였습니다. 10월 이인임, 지용수, 양백안, 이성계, 임견미 등이 요동성을 진격하여 요동성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과 한달 남짓 지난 아군의 실수로 군량미가 모두 불타면서 고려는 고민끝에 퇴각하였습니다. 얼마뒤 북원 세력을 정리한 명이 차지하게 하고, 고려도 왜구 방비, 재정탓도 퇴각의 원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