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은 천민 출신이지만 기술로 인정 받아 세종 시기 과학 기술 발전에 큰 기여와 공적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1441년 가마 사고로 파직된 뒤 어떤 기록에도 그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습니다.
1442년 장영실이 감독해 만든 국왕용 가마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때문에 장영실은 의금부에서 국문으로 곤장 80대와 파직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그의 이름은 다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유력한 주장은 다시 천민이 되었거나 복귀 없이 일개 장인으로 여생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노비 출신이라는점과 가마사고로 국왕에 대한 불경으로 다시 재기용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