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공학 고등학교 시절, 매일 투격태격하며 지내던 옆자리 남학생과 비 오는 날 겪었던 설레는 일화가 있습니다. 마침 소나기가 쏟아진 날이라 우산이 없어서 교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평소 짓궂던 그 친구가 툭 다가오더니 자기 우산을 제 쪽으로 확 씌워주었습니다. 우산이 작아서 어깨가 다 젖어가는 걸 보고 제가 미안해하자, 그 친구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리며 너 감기 걸리면 내일 필기 빌려줄 사람 없어서 안 된다고 핑계를 대더라고요. 그렇게 집에 걸어가는 내내 심장 소리가 빗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정도로 두근거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원래 제 집 방향과 완전히 반대 방향에 살고 있었습니다. 서로 모른 척하며 좁은 우산 속에서 나란히 걷던 그 하굣길의 풋풋한 공기는 지금 떠올려도 도파민이 마구 솟구칠 만큼 달콤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