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난중일기의 역사적 가치는 어느정도 인가요?
안녕하세요.
난중일기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나요?
만약에 그렇다면 세계기록유산에 포함되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 된 것인가요?
1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난중일기 : 충무공(忠武公)이순신(李舜臣)이 임진왜란 7년 동안의 전쟁 중에 쓴 일기.
지정번호 : 국보 제76호
소장 : 현충사
소재지 : 충남 아산시
시대 : 조선시대
크기 : 7책, 부록 1책
종류 : 일기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이 임진왜란 7년 동안의 전쟁 중에 쓴 일기. 7책. 부록 1책. 빠진 부분도 있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1592)로부터 끝나던 해(1598)까지의 일을 간결 ·명료하게 기록하고 있는 대단히 중요한 전적(典籍)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일기와 서간첩 및 임진장초와 함께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다.
【친필초고본과 이충무공전서본】 난중일기에는 두 가지 전적이 있는데, 그 하나는이충무공의친필 초고본으로, 충남 아산(牙山)의 현충사(顯忠祠)에 보관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있다. 본래 충무공은 다만 일기를 썼을 뿐, 거기에 어떤 이름을 붙였던 것은 아니며, 정조 때에 이르러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 편의상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여 권5에서 권8에 걸쳐 수록한 다음부터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충무공전서》는 1795년(정조 19)에 완성되었는데, 그 편찬작업은 윤행임(尹行恁)과 유득공(柳得恭)이 맡아 하였다. 그런데 충무공의 친필 초고본과 《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 까닭은 전서의 편찬자들이 충무공의 친필 초고를 가져다가 정자로 베껴 판각에 올릴 때에 생략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대신 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부분이 정작 충무공의 친필 초고본에는 빠진 부분도 있다.
즉, 임진년 정월 1일부터 4월 22일까지, 그리고 을미년(乙未年) 1년 동안과 무술년 10월 8일부터 12일까지가 누락되었는데, 이것은 필경 편찬작업과정이나 아니면 그 후에 유실된 것 같다. 친필 초고본은 별책 부록까지 합하여 8책에 이르며, 제5책과 제6책은 두 책이 모두 정유년(丁酉年) 일기여서, 8월 4일부터 10월 8일까지가 중복되어 있다. 그 까닭은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제5책에 간지(干支)가 잘못 적혀 있는 곳이 많고, 또 내용을 보아도 제6책의 것이 비교적 자세하게 적혀 있는 점으로 미루어, 나중에 충무공이 시간 여유를 틈타 앞의 간지의 잘못을 바로잡는 한편, 기억을 더듬어 보완하였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내용】 국난을 극복해낸 수군사령관으로서 충무공의 엄격하고도 지적인 진중생활을 평이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유비무환의 진중생활, 인간 이순신의 적나라한 모습과 생각, 부하를 사랑하고 백성을 아끼는 마음, 부하에 대한 사심없는 상벌의 원칙, 국정에 대한 솔직한 간언, 군사행동에 있어서의 비밀 엄수, 전투상황의 정확한 기록, 가족 ·친지 ·부하장졸 ·내외 요인들의 내왕 관계, 정치 ·군사에 관한 서신교환 등이 수록되어 있다.
【가치】 첫째, 임진왜란 7년 동안의 상황을 가장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일기로서,전란(戰亂) 전반을 살피는 사료(史料)로서의 가치와 나라의 위급을 구해낸 영웅(英雄)의 인간상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생사를 걸고 싸우던 당시의 진중일기(陣中日記)로서 그 생생함이 더욱 돋보이며, 단순한 전쟁사 이상의 가치가 있다. 셋째, 그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 여러 부문에 걸친 측면사와, 특히 수군(水軍)의 연구에 도움을 준다. 넷째, 충무공의 꾸밈 없는 충(忠) ·효(孝) ·의(義) ·신(信)을 보여주는 글이라는 점에서 후세인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다섯째, 무인(武人)의 글답게 간결하고도 진실성이 넘치는 문장과 함께 그 인품을 짐작케 하는 웅혼(雄渾)한 필치는 예술품으로서도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