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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근거로 친일파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어린이날의 주인공인 소파 방정환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친일파라는 이야기도 일부 있었는데 어떤 근거로 친일파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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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Youangel
      Youangel

      안녕하세요. 친근한jy200입니다.


      3.1운동의 주요 세력이었던 천도교는 이후 개벽사를 창설해 문예운동을 시작한다. 즉, 개벽사는 천도교 교단이 만든 잡지사이며, 핵심 멤버들이 천도교 교인들이며, 잡지 운영 기금의 상당 부분이 천도교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방정환은 3.1운동의 중심이었던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셋째 사위이다. 개벽사에서 발간되는 잡지가 민족계몽운동의 수단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방정환은 1931년에 사망한다. 그가 1930~40년대 군국주의 혹은 내선일체론과 거리가 있는 이유이다. 그가 일제 강점기 후반까지 생존했다면 어떠한 궤적을 걸었을지 섣부르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하지 않은 일마저 넘겨짚지는 말아야 한다. 정말 시니컬한 사람은 소파가 일찍 죽어서 변절할 기회도 없었다고 빈정거린다. 그러나 그 말은 우리가 100년 일찍 태어났으면 친일을 했을 거라는 말과도 같다. 사람은 시대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친일에 대한 의혹의 근거로 드는 것은 방정환이 천도교 신파 세력과 가까웠다는 점이다. 1940년대에 이르면 식민지 조선은 전쟁에 동원되고, 조선 내의 모든 종교, 사상 집단이 친일로 전향한다. 이때 천도교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변절의 흐름 속에 천도교 신파 세력이 많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들과 친분이 있었던 방정환에게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를 구분해야 한다. 1940년대의 동료들의 행동을 1920년대의 소파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방정환의 일생에서 친일의 오점이 묻을 만한 부분은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손병희의 사위가 되면서 방정환이 커다란 부를 누리면서 떵떵거렸다는 음해가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민족주의 세력이 탄압을 받지 않았으면 누가 받았다는 것인가. 오늘날까지 친일파 척결도 안되는 나라에서 이 정도면 명예훼손이다.



      방정환이 어릴 땐 몹시 말랐다가 청년이 된 후에 엄청난 비만이 되는데 혹자는 부잣집 사위가 되더니 너무 잘 먹어서 그렇다며 비난을 한다. 뚱뚱한 게 건강하거나 부유하다는 것은 과거의 미신적인 속설인 것이고 실제로 소파의 건강은 몹시 안 좋았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신부전증으로 보는 게 옳다. 몸이 많이 부었고, 코피를 심하게 흘렸으며, 결국 32세에 요절한다. 단 것을 무척 좋아했다고 하는데 당대에는 설탕과 당뇨에 대한 경계감이 다들 부족했다. 더군다나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긴 출판업 특유의 직업병도 더해졌으리라 본다. 방정환이 뚱뚱하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네티즌이 있다는 사실에 유감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