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학문

역사

햄버거
햄버거

예송 논쟁이 발생과 경과를 알려주세요.

조선시대의 당파 싸움의 대표적인 예시가 예송 논쟁이라는데요. 예송 논쟁은 어떤 계기로 발생하게 되었고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 궁금해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전문가 답변 평가답변의 별점을 선택하여 평가를 해주세요. 전문가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예송논쟁은 17세기 중반, 즉 효종(孝宗)과 그의 후계자인 현종(顯宗) 시대에 발생했습니다. 이 시기는 조선 사회가 성리학적 가치관을 중시하며, 유교적 예절과 규범이 더욱 강조되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왕실의 제사와 장례식에 대한 관습과 규정을 두고 상반된 의견이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예송논쟁은 크게 두 가지 사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예송(1659): 효종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장례를 둘러싼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부 유학자들은 효종의 장례식에서 그의 어머니인 인선왕후의 예를 따르자는 주장을 했고, 다른 유학자들은 이전 왕의 제사 규범을 따르자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1년 상복'과 '3년 상복'에 대한 논의가 벌어졌습니다.

    ​두 번째 예송(1674): 현종의 장례와 관련하여 다시 한번 논쟁이 발생했습니다. 이때는 더욱 격렬해졌으며, 왕실의 권위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얽히게 되었습니다. 각 진영은 자신이 지지하는 유학자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장례 예법을 주장하였고, 이는 정치적 세력 간의 갈등으로 확대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유성 전문가입니다.

    ✅️ 예송논쟁은 현종 때 인조의 계비였던 자의대비가 어떤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던 것인데, 첫 예송인 기해예송에서는 서인이, 두 번째 예송인 갑인예송에서는 남인이 승리한 대표적인 예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예송 논쟁은 조선 후기 성리학적 예제를 둘러싼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 갈등을 말합니다. 1차 예송(기해예송)은 효종의 죽음(1659) 이후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가 입어야 할 상복 기간을 눌러싸고 주자가례에따라 기년설(1년)을 주장하는 서인과 3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자안 남인의 대립입니다. 결과적으로 서인의 주장에 따라 기년설이 채택되었습니다. 그리고 2차 예송(갑인예송)은 효종비 인선왕후의 죽음(1674) 당시 시어머니인 자의대비의 상복 기간을 놓고 서인은 대공설, 남인은 기년설을 주장했습니다. 당시에는 남인의 주장에 따라 1년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송논쟁은 효종의 왕위에 대한 정당성을 바탕으로 하며, 결과적으로 남인이 최종 승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