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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한사발원샷이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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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당 최남선이 독립 운동을 하다가 친일로 노선을 변경한 이유가 있나요?

육당 최남선은 1919년에는 3.1운동 때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하는 등의 독립운동을 하다가 그로부터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는 등 친일로 돌아섰는데 이 가간안에 노선을 바꾸게 만든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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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당 최남선은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를 지은 민족 지식인이었지만 일제 강점기 말에 친일파로 변절합니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이른바 문화통치의 영향과 실력양성의 실패로 최남선 등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자치운동을 전개합니다. 최남선은 민족불구론을 주장하며 조선 민족의 결함을 강조하고 일본의 지배를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1927년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면서 친일전 성향으로 전향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일제가 본격적인 침략 정책을 추진하자 그는 일본의 문화동화론을 지지하며, 일본 신도 보급과 학병 지원 권유 등 친일 활동에 적극 나섰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육당 최남선은 독립 운동을 하다가 3년이나 옥에 갇혔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친일적인 행적으로 인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친일은 개인적인 부귀를 누리기 위함이 아닌 당시 일제하에서 학문적 연구를 위한 최소한의 협력이었다고 항변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당시 서적등을 발표하면 폐간 당하기 일쑤여서 이런 주장도 일견 일리가 있긴 하지만 친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봅니다.